낭만같은 소리하네

- 재수 시기

by 선홍


‘라떼’는 낭만이 있었다. 재수 시절에도.


IMF가 올 것을 모르고 있던 90년대 초반에 재수를 하게 된 나는 매일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가지고 다녀야 했다. 급식이란 걸 못해보고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게 돼서 그런지 ‘급식충’이 되어 보는 게 지금도 소원인데.


무거운 책가방에 보온밥통까지 메고 새벽길을 나서면 아무 이유도 없이 울컥할 때가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한창 놀러 다니면서 미팅하고 있을 텐데... 먼 재수종합학원까지 지하철을 타고 주야로 다닐 때면 책가방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1년 동안 힘들게 공부한다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다는 보장도 없었고 말이다.


지금 세대들은 절대 믿지 못하겠지만 ‘라테’만 해도 지방 국립대의 위상이 상당했기에 부산 최고의 국립대에 들어가는 것도 목표였지만 부모님 몰래 꿈꾸었던 건 좁은 부산을 떠나 서울의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방에 사는 여학생이 서울로 가려면 공부를 ‘아주 겁-나’ 잘해야 가능했다. ‘82년생 김지영’도 집안에서 남녀 차별을 당했으니 ‘70년대 생 홍라떼’ 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불행히도 평범한 수준으로만 잘하던 나는 초반엔 의욕을 활활 불태우며 공부를 했으나 그 불꽃은 곧 이성에 대한 관심으로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등급별로 반을 나누었는데, 1등급 반이 아니었던 터라 그런지 공부에 목숨 거는 분위기보단 인간적인 매력(?)이 살아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더군다가 피 끓는 20대 초반들이 남녀 합반을 한 채 하루 종일 수업을 들었으니 여중, 여고만 나왔던 나에겐 남학생과 같이 공부하는 것만 해도 완전히 신세계였다.

초반엔 공부만 하던 하는 나는 차츰 친구 사귀는 재미에 빠져들어 여자 친구들과 열심히 편지를 주고받았고 - 그때는 핸드폰도 나오기 전이었다! - 요즘 말로 ‘남사친’들에 짝사랑하는 남자까지 생겼다. 삼삼오오 어울려 광안리 바닷가로 놀러 갔을 땐 정말 환장하게 재밌었다.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그때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랬기에 그 시절만큼 남녀 구분 없이 동지의식을 느껴본 적이 이후로도 없었다.


지금은 사라진 추억의 ‘음악 감상실’ -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해외 뮤지션들의 영상을 스크린으로 보거나 음악을 신청해 들을 수도 있는 곳 -에 종종 가서 괜히 ‘QUEEN' 같은 외국가수들의 곡만 들으며 똥폼을 잡기도 했었다. 지금처럼 K-POP 전성시대가 올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다. 쓰다 보니 딸이 읽을까 봐 민망해지기 시작하는데. (시험 친 날 같은 특별한 날에만 놀러 갔었다, 진짜야!)


2021년 강남의 종합학원으로 등원하는 딸은 나와는 달리 SF영화에 나오는 복제인간들처럼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냈다. 아무리 유명한 강남의 종합학원이라도 긴 시간 붙어 지내는 종합반은 지금도 어쩔 수 없이 연애 문제가 많이 불거지긴 한다고 들었지만 오후부터 시작되는 야간반은 그렇지 않았다. SKY를 목표로 하는 분위기답게 서로에게 무관심, 말 걸지 않는 분위기로 공부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딸이 강남에서 학교를 나오지 않다 보니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어 외롭긴 했지만 그 덕에 공부만 한 것도 장점이었다고 봐야 하나.


강남의 고등학생들은 재수를 많이 하는지 학원 근처 고등학교에선 학원까지 지원 나와 격려품(?)을 전달하기도 했단다.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 ‘컨설팅’을 받는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고3이 될 때까지 교육을 시키고도 모자라 이젠 재수가 필수인 시대가 된 듯하다.


코로나 시대라 더했겠지만 한숨 돌리는 식사시간조차 첫째는 유리 칸막이가 쳐진 테이블에서 혼자 말없이 급식을 먹었다. 급식 줄에 서 있다가 남학생들이 주식 투자한 경험을 얘기하는 걸 들었다고 하니 철없던 ‘라떼’와 너무 다른 요즘 아이들 수준에 상전벽해, 창상지변, 격세지감을 느낀다. 요즘 좋다는 재수 학원은 공부 기술자들과 공부 기계들이 만나 엘리트를 생산하기에 아주 효율성이 뛰어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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