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소설을 쓰게 된 이유

- 고등학교 시기

by 선홍

앞서 얘기한 바 있듯이 고등학교 재학생들은 N수생과의 경쟁이 치열한 ‘정시’보다 ‘수시’를 준비한다. 그렇다고 수시를 더 수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울트라 캡숑 짱’ 착각이다.


수시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무슨 과에 가고 싶은지에 대한 목표부터 정하는 게 우선이다.

문제는.... 타고난 천재들 빼곤 날 때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꿈이 뭔지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다른 경험을 해보지 않은 평범한 우리 집 아이들은 당연히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었다. 그냥 취직 잘되는 과에 들어가고 싶다는 정도?

‘남 따라 가단 망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는 나로선 취직 잘되는 과라는 허상이 보장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기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에서 미리 직업체험 시간을 갖게 해 주지만 수박 겉핥기 식이라 대단한 영감을 받아온 적이 없었다. 영화업계에서 일해 본 경험이 다인 나로선 해줄 수 있는 조언도 한정적이었고.


첫째는 고민 고민하다가 자신이 과학을 좋아하고, 수학을 잘한다는 착각으로 ‘과학중점’ 일반고를 선택했는데, 그게 아니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수학, 과학 성적만으로 판단한 것이 문제였다. 고등학교 공부는 특히 이과 내에서 경쟁하게 되면 특정 과목에서 뛰어나지 않으면 정말 힘들었다.


처음엔 약학이나 생명과학 계열을 가고 싶다던 딸은 ‘학생부 종합전형’의 ‘자기소개서’와 ‘생활기록부’를 위해 원하는 동아리가 없자 관련 동아리를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독서활동이 별 의미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관련 도서도 열심히 읽었다. 하고 싶지 않다던 반회장 활동에 군기 세다는 방송반에도 들어가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점자책 만드는 등의 여러 봉사활동도 했으며 딱 한번뿐이었지만 대학에서 여는 캠프에도 들어가 관련 학과에 대한 설명까지 들었다.

이 와중에 시험 내신 성적도 챙기면서 선행학습까지 해야 하니 한국 고등학생의 ‘수시’ 준비가 얼마나 빡(?)센지 알 수 있다.


첫째 같은 경우는 바쁘긴 했지만 학원을 별로 다니지 않아 아주 무난한(?) 정도라고 할 수 있었고, 수학, 영어 학원까지 꾸준하게 다녔다면 정말 잠잘 시간이 모자랐을 것이다.

중계동의 학원들을 알아보니 한 과목 당 일주일에 3번, 2~3시간 수업을 하는 것이 보통이라 많은 학원 숙제까지 다하면서 다들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의문을 넘어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속으로 아이가 지금 고생하는 게 보기 힘들다고 놔뒀다가 실패하느니 지금 닦달하더라도 나중에 해피한 결과를 손에 쥐는 게 훌륭한 엄마가 아닐까 많이 고민했다. 다른 엄마들처럼 못해줘서 조바심도 났다. 강남 아이들은 밥 먹을 시간도 모자라 학원과 학원 사이 짬날 때 엄마들이 미리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놓고 기다린다던데 말이다.


고민의 결과는 아무리 전쟁 같은 입시라도 아이와 내가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결과가 와도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코어를 지킬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싫은 일엔 에너지가 더 많이 드니 억지로 하지 말아야 했다. 일 욕심이 많은 내가 아이 뒷바라지만 하게 되면 우울해질 것은 당연지사, 타고난 잠꾸러기인 첫째가 잠을 희생하면 돌아이(?)가 될 것도 불 보듯 뻔했다. 남들이 한다고 나도 따라 하다간 폭망 할 수 있다.

‘게리 바이너척’은 신간 ‘부와 성공을 부르는 12가지 원칙’에서 ‘아무리 자식을 위한 일이어도 나의 행복을 억제하면 원망이 생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른 일 때문에 중단하면 후회가 생긴다’라고 썼다. 평소 생각하던 바와 같아 200퍼센트 공감했는데.


아무튼 나와 아이가 행복한 길을 찾는다는 게 듣기엔 좋은 말 같아도 그 결과가 실패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까지 다 감당하겠다는 자세, 내가 내린 결정이니 실패해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느껴보는 것이 아이에게 더 중요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첫째는 결국 이과에 맞는 수시 준비를 열심히 하다가 문과로 전향해버렸다. 수학 성적이 발목을 잡자 내신 성적을 올리기 위해 내린 선택이었지만 일관성 없는 ‘자소서’와 ‘생기부’ 때문에 큰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생명연장의 꿈’, 암을 정복하는 알약을 개발하는 연구원이 꿈이었던 학생이 갑자기 과학 전문 기자나 SF소설가로 바뀌는 그런 스토리? 얼마나 다들 ‘자기소개 소설’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문제가 많은 ‘자소서’도 이제 없어지는 추세다. 입시전문가들이 코칭한다는 자소서를 그런 도움 안받고 써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수시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가도 싶은 대학들은 다 수시로 넣었고, 준비하지도 않았던 정시에서 합격하는 대학이 나오자 아이는 “뭐지? 수시 준비 진짜 열심히 했는데 다 날아갔네. 허무하다...” 라며 한숨을 쉬었다. 나도 뭐라 위로할 말이 없었는데, 문과로 전향한 것에는 후회가 없다고 했다. 이과로 가려던 것도, 문과로 바꾸려고 한 것도 자신이었기에 지금 안 했다면 나중 대학 들어가서 다른 과로 전과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자식, 자기가 한 결정은 후회하지 않는 구만.’ 생각하면서도 아이의 고집을 알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과의 비교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각자의 성향에 맞게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기를 오늘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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