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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감노트 Apr 05. 2023

05. 평일 대낮, 한 카페에서 본 새로운 세상

- 입은 최대한 닫고 귀는 최대한 열어라, 그리하여 실속을 챙겨라

오전 업무가 끝난 후 점심 및 휴식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는다. 이때 조각난 자투리 시간 활용이 꿀맛인데 인근 조용한 카페를 찾아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은근한 즐거움이다. 평일 대낮의 카페는 인적이 드물어서 조용히 시간 보내며 생각을 가다듬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이시간에 방문한 손님들은 다른 이들과 다른 아우라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대부분 회사에 갇혀 있는 직장인들의 일상적인 라이프에서 벗어난 사람들인지라 그 자체로 특별해 보인다. 특히 이들이 나누는 대화가 사람 없는 조용한 공간 덕에 유난히 잘 들리게 되는데 새로운 세상을 간접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내 또래보다 약간 어려 보이는 젊은 부부와 건축설계사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 이렇게 세 명이 큰 테이블 위에 노트북과 설계도면을 펼쳐 놓고 대화 중이었다. 부부는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설계사와 상담 중이었다. 젊은 나이에 땅을 매입하고 전원주택을 짓게 된 계기와 과정 등이 대화 중 들리는데 나도 모르게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은 전원주택 시공권을 확보하고자 나름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의 대화 장면을 보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젊은 부부는 또래 직장인들의 일상을 이미 초월하여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도전하고 있었다. 사업을 하면서 자금을 확보하고 땅을 매입하고 전원주택의 설계를 의뢰하는 하나하나의 과정은 보편적인 일상이 아닌, 또래에 비하면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이라 하겠다. 전원주택 설계도면을 보며 그들이 준비해온 요구 사항 하나하나가 나름 그들의 꿈을 현실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인 셈이다. 


건축설계사는 시공사례와 경험을 부부에게 설명하는데 반복되는 화두는 단연 비용 문제다. 구체적으로 원자재, 인건비의 상승 얘기였는데 의뢰자가 생각하는 비용과 키재기를 하며 건축 설계 방향이 왔다갔다 하는것이다. 몇 년사이에 원자재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진행되어 이미 일상생활속에서 체감할 수 있게 된 것은 이제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한 역시 피할 수 없는 조용한 약탈자 ‘인플레이션’을 다시한번 체감했다. 



갑과 을이 있다. 갑은 의뢰하고 을은 의뢰받기 위해(돈을 따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갑은 어느덧 주제를 벗어나 의뢰건에서 기상천외한 무용담으로 빠진다. 땅 투자 성공담, 다른 누군가의 무용담, 자산 자랑, 어느덧 전원주택 설계 의뢰에 집중하지 못하고 삼천포로 빠진 채 커지고 있는 목소리를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을의 반응도 놀랍다. 갑과 눈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현재 미팅의 본질을 뒤로한 채 본인과 관계도 없는 무용담에 열심히 반응해주고 있다. 이 역시 의뢰건을 따내기 위한 일련의 과정인지라 그저 시간낭비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저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제 3자 입장에서는, 맞춰주느라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을의 모습이 역력히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갑의 이야기 재료가 떨어질 즈음 되니 더 이상 전원주택 이야기도 꺼내지 않는다. 어느덧 대화의 페이스는 을에게로 넘어가 을의 의지대로 대화의 흐름은 흘러가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에너지는 무수한 도전을 가능케하고 그 도전을 성공으로 연결시킬 가능성을 높인다. 의지와 의욕이 앞서는 그런 시기가 있다. 하지만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불필요한 소모전도 생기는 것 같다. 지나친 무용담과 자랑은 줄이고 되려 귀는 열어야 대화의 주제를 벗어나지 않은 채 내가 챙겨야 할 사항들을 그나마 덜 놓친다.


나 역시 불필요한 말을 꺼내 안하니만 못한 상황을 만들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말을 하느라 정작 닫힌 귀로 인해 귀중한 기회와 정보를 흘려버린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반대로 그런 상황을 놓치지 않고 어느새 본인의 페이스로 바꿔버린 갑 같은 을의 노련함에 무릎을 치게 된다. 


30분가량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평일 한낮 인적 드문 외진 카페에서 얻은 귀중한 경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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