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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쁜아이 May 06. 2021

대만 파인애플과 관련된 역사이야기

일본 때문에 사라진 대만의 재래종 파인애플

대만여행 중에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과일은 역시 망고죠.  하지만 망고만큼이나 대만에서 인기 있는 또 다른 대표 과일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적으로 우수한 품질로 평가받고 있는 파인애플! 



워낙 유명한 대만의 파인애플은 생과일뿐 아니라 지금은 파인애플로 만든 펑리수(鳳梨酥)라는 파인애플 케이크로 여행객들을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대만을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사간다는 펑리수는 이제는 한국에도 수입이 되면서 대만을 찾아오지 않아도 맛볼 수 있는 인기 대만 먹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만의 파인애플 속에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대만에서 토종 파인애플이라 불리는 투펑리(土鳳梨)는 사실 외래종 파인애플입니다. 과거에 대만의 특별한 재래종 파인애플을 재배하던 역사가 있는 대만이지만 지금은 재래종이 사라지고 외래종이 토종 파인애플이 되어 버렸어요.


재래종 파인애플의 역사는? 

외래종 파인애플이 대만 토종 파인애플이 된 이유는?  

대만 파인애플 통조림이 유명세를 타게 된 이유?

대만에는 파인애플 박물관이 있다?


그럼 지금부터 대만 파인애플 속에 숨겨진 대만의 역사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청나라 시대에 시작된 대만의 파인애플 재배


대만 파인애플 재배는 약 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북부가 원산지인 파인애플은 포르투갈, 스페인을 통해서 세계 각지에 퍼졌고 16세기경부터 미주(美洲) 지역의 파인애플이 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만으로 파인애플이 들어온 시기는 중국 청나라의 강희제(康熙帝) 시기입니다. 


지금은 파인애플이 세계 곳곳에서 재배되고 있지만 사실 파인애플의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의 적도 지역입니다. 적도 지역의 충분한 일조량은 파인애플의 과즙을 풍부하게 해주는 최적의 조건이거든요. 대만이 적도 지역은 아니지만 대만은 온대지역과 열대지역을 나누는 기준인 북회귀선이 가로지르는 곳이라 두 개의 기후가 모두 존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만을 가로지르는 북회귀선의 남쪽 지역은 파인애플을 재배하기에 좋은 최적의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나라 시대 이후 대만 남쪽 열대기후 지역에서 파인애플이 재배되기 시작했고 대만 기후에 적응하면서 재배된 파인애플은 당시 다른 지역에서 재배된 품종보다 훨씬 깊은 향과 높은 당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대만 재래종 파인애플로 알려지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만 재래종 파인애플은 대만에서 점차 사라지고 나중에 들어온 외래종이 대만의 토종 파인애플을 대신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대만의 파인애플을 일본으로 가져가고 싶은 일본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배하고 동양의 패권이 일본으로 넘어오면서 대만도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대만의 파인애플 역사에도 큰 변화가 오게 됩니다. 


일본 대만 통치와 대만의 파인애플 품종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대만을 통치하면서 일본인들은 대만에서 재배 중인 파인애플을 접하게 되고 그 맛과 향에 반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운송 수단이 아직 발전되지 않던 시기라 대만으로 들어와 있던 소수의 일본인들만이 대만 재래종 파인애플을 맛볼 수 있었어요. 


대만을 통치하면서 대량의 황금과 고급 목재를 본국으로 옮기던 일본은 어떻게 하면 대만의 맛있는 파인애플도 일본으로 함께 가져갈 방법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시 운송 수단이나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갓 출하된 파인애플의 맛과 향을 일본에 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죠. 


그러다가 찾아낸 방법이 바로 대만에서 생산된 파인애플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거였어요. 당시 일본은 서양으로부터 통조림 제조 기술을 도입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때였거든요. 



그래서 일본은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1918년 대만의 남쪽 가오슝(高雄) 지역에 파인애플 통조림 회사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대만에서 생산된 품질 좋은 파인애플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대만에서 재배된 파인애플로 통조림 제조를 시작하면서 몇 가지 문제가 생겨납니다. 대만 재래종 파인애플이 향과 당도가 뛰어나긴 하지만 외래종 파인애플에 비해 크기가 작은 편이라 출하량이 많지 않았고 더 큰 문제점은 껍질이 두껍고 단단해서 파인애플의 과육을 얻기 위해 수작업 공정이 필요했고 그 결과 많은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파인애플 통조림 생산 작업을 기계화 하기에 너무 어려운 문제점이었죠. 


일본은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요? 결론은 대만 재래종 파인애플을 통조림으로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대만에서 생산되고 있는 재래종 파인애플 통조림 생산을 포기합니다. 




파인애플 통조림을 포기할 수 없어!!


하지만 이미 대만산 파인애플의 맛에 푹 빠져버린 일본인들은 파인애플 통조림 제조 사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대만에서 재배되던 재래종 파인애플을 포기하고 통조림 제조에 적합한 품종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미국 하와이의 품종이 통조림을 만들기에 적합하다는 걸 별견하게 되죠. 하와이에서 재배된 파인애플 품종은 크기도 비교적 큰 데다 껍질이 얇고 부드러워 인력이 추가될 필요 없이 기계만으로 과육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일본은 바로 하와이의 품종을 대만으로 가지고 들어와 연구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노력 끝에 가장 좋은 품질의 파인애플 종자를 찾아냅니다. 일본은 새로 재배한 하와이 품종의 파인애플을 이용해서 통조림을 대량으로 제조해 낼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대만의 재래종 파인애플을 사라지고 대만의 기후에 적응한 외래종 파인애플이 대만의 재래종 파인애플의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대만에서 생산된 파인애플은 이처럼 통조림으로 가공되어 일본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오랜 시간 일본 내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떠난 후...


일본이 떠난 후에 대만은 일본인들이 남겨 둔 산업시설들을 기반으로 빠른 속도로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는데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이 대만을 떠난 뒤에도 대만의 파인애플 통조림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고 어느샌가 대만 파인애플 통조림의 생산량은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라서게 됩니다. 이제는 일본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대만의 파인애플 통조림이 큰 인기를 얻게 된 거예요. 



하지만 대만 통조림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운송업과 농업이 발전되면서 통조림의 수요가 점점 줄어들었고 세계 어디서든 쉽게 생파인애플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파인애플 통조림 공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현재는 가오슝 지역에 일제강점기 시기에 세워진 대만 파인애플 공장의 일부 건축물만 남아있어요. 2004년에 이곳은 대만 정부에 의해 역사 건축물로 지정이 되었으며 2018년부터 대만 파인애플 박물관(鳳梨工廠)으로 변모되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있습니다.



대만 현지인들을 이 건축물을 보면서 과거에 자주 먹었던 그리운 그때 그 시절의 파인애플 통조림의 맛을 회상하곤 합니다. 지금은 대만에서 갓 출하된 당도 높은 풍부한 파인애플을 저렴하게 맘껏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현지인들이 과거에 먹던 대만 파인애플 통조림의 맛을 그리워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이렇게 복잡하면서도 긴 역사를 가진 대만 파인애플!! 지금도 대만 파인애플은 세계적으로 최고 품질의 파인애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대만에 여행을 오신다면 유명한 쇼핑리스트인 펑리수만 구매할 것이 아니라 갓 출하된 품질 좋은 생파인애플을 맛보는 걸 추천해드립니다. 그럼 당시 통조림으로라도 만들어 일본으로 보내려고 노력했던 일본인들의 맘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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