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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쁜아이 May 03. 2021

대만 여행지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진과스, 지우펀

세 번째 번영을 누리고 있는 금광촌 진과스, 지우펀

대만 여행을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예스진지 투어"


예스진지는 대만의 북동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네 곳의 여행지(예류지질공원, 스펀천등마을, 진과스, 지우펀)를 일컫는 말입니다. 대만 여행을 패키지 투어로 찾아오든 개별 자유여행으로 찾아오든 대부분의 여행객이 여행 일정 중에 포함시키는 일정으로 바쁜아이도 대만 현지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며 가장 많이 찾아갔던 여행지이기도 해요. 



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이 대만의 북동부 지역에 위치한 건 사실이지만 진과스와 지우펀을 제외한 각 여행지의 거리는 가까운 편은 아니에요.


타이페이메인역 ~ 예류지질공원 : 약 40km (차량으로 약 1시간 소요)

예류지질공원 ~ 스펀역 : 약 30km (차량으로 약 45분 소요)

스펀역 ~ 진과스, 지우펀 : 약 25km  (차량으로 약 40분 소요)

지우펀 ~ 타이페이 시내 : 약 42km (차량으로 약 1시간 소요)


이렇게 일정 중 차량으로 이동하는 시간만 대략적으로 4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코스이니까요!


사실 예스진지 투어 여행 일정은 짧은 시간에 많은 여행지를 둘러보려는 한국인 여행객들의 여행 성향에 특화된 특별한 여행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유는 대만 여행 중 하루 일정으로 네 곳의 개성 있는 여행지를 둘러보고 멋진 배경으로 아름다운 인생 사진을 카메라에 담아올 수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각 여행지의 매력을 충분히 즐길 수 없다는 단점이 있는 일정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행지에서 멋진 인생 사진을 남기는 게 목적인 여행객들에게는 이 부분이 큰 단점이 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각 여행지 속에 숨겨진 역사를 더 자세히 소개해주고 싶은 여행 가이드에게는 엄청 큰 단점으로 보이는 부분이네요.


바쁜아이도 예스진지 투어 가이드를 하면서 각 여행지가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이야기들을 충분히 전달해주지 못해서 아쉬울 때가 너무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예스진지 여행지 중 진과스와 지우펀이 들려주는 역사이야기를 글로 소개해보려 해요.




금광으로 유명한 황금도시 진과스(金瓜石)



진과스가 유명해지게 된 사건은 18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90년대 당시 대만의 서부를 가로지르는 철도공사를 진행하던 중에 한 인부가 진과스 주변 수로에서 사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후 이 지역에 대량의 황금이 있을 가능성이 대두되었고 1893년 한 농민이 실제로 지우펀 근처에서 작은 금맥을 발견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지우펀 근처에서 더 큰 금맥이 발견되면서 지우펀과 진과스 지역의 고즈넉한 분위기였던 산골 마을이 번영하는 금광촌으로 변모되었습니다.


하지만 2년 뒤인 1895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배하면서 대만은 일본의 지배를 받기 시작합니다. 대만을 통치하던 일본이 진과스, 지우펀의 황금에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 일본은 1896년 대만 광업 규정법을 만들면서 대만 현지인들의 광물 채광권은 모두 박탈했습니다. 따라서 이때부터 진과스의 황금을 포함한 모든 광물은 일본의 소유로 넘어가게 됩니다. (사실 일제 강점기 시기에 일본으로 넘어간 대만의 자원들은 황금만이 아니에요. 당시 일본에게 넘어간 대만의 자원 중에는 아리산의 질 좋은 목재들도 있습니다.) 


일본은 대만을 통치하는 기간 동안 더 많은 황금을 채굴하기 위해서 일본 본토의 선진기술과 전문가들을 대만으로 이주시켜 대만 사람들이 발견한 금맥을 시작으로 금광을 아래로 파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금광의 이름은 번산쾅컹(本山礦坑)이라고 합니다. 진과스 황금박물관을 찾아가면 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한 금광 입구가 바로 그중 하나인 번산5컹(本山五坑) 이에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외국인 국군 포로들이 이 광산으로 잡혀와 강제 노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과스 황금박물관 안에는 당시에 이 곳에서 일을 하던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외국인 전쟁 포로들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노동 환경이 워낙 열악했기 때문에 금광에서 일하던 수많은 외국인 포로들이 진과스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진과스 황금박물관 입구에 세워져 있는 동상은 진과스 금광에서 포로 생활을 하며 고통을 겪던 노동자들의 상황을 이야기해주고 있네요.



진과스 황금박물관을 둘러보고 진과스 주변의 해안으로 이동하면 진과스의 또 다른 멋진 여행지를 만날 수 있는데요. 진과스 황금박물관에서 해안으로 이동하면서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핫플레이스는 진과스 황금폭포입니다. 평소에 봐 왔던 폭포와는 완전 다른 모습의 특별한 폭포예요. 



황금폭포를 감상하고 조금만 더 이동을 하면 만나는 또 하나의 일제 강점기 시대의 유적을 만나게 됩니다. 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 음침한 분위기의 건축물인데요. 13층고적(十三層遺址)이라 불리는 건축물입니다. 이 건축물은 과거에 일본인들이 진과스에서 캐낸 동광석을 제련하던 제련소입니다. 금맥이 있던 진과스에 왜 이렇게 큰 규모의 동광석 제련소가 있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텐데요. 그 이유는 일본군이 진과스에서 더 많은 황금을 캐내기 위해 번산쾅컹 금광을 수직으로 파 내려가다가 황금 외에 엄청난 양의 동광석까지 발견하게 되었거든요!



이제 진과스의 여행이 마무리되어 갑니다. 진과스의 마지막 볼거리는 13층고적(十三層遺址) 앞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태평양 해변이에요. 하지만 해안을 자세히 보면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바로 해안의 빛깔! 저 멀리 태평양의 에메랄드 빛깔의 푸른 바다색과 해안선 주변의 황색의 빛깔의 바다색이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있는 해안입니다. 그 이유는 진과스의 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물은 광물질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투명한 색이 아닌 황색의 빛깔을 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물이 맑고 푸른 바닷물과 만나면서 아주 특별한 장관을 연출하는 해안입니다!! 특히 비가 내린 뒤의 맑은 날에 찾아오면 더 멋진 장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오랜 역사와 아픔을 안고 있는 진과스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군이 대만을 떠난 후에도 금광촌으로의 한동안 부흥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에 광산의 자원이 완전히 고갈되면서 이 지역의 모든 사람이 떠나고 약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진과스와 지우펀은 과거에 사람들이 살던 건물과 녹슨 기계들만 덩그러니 폐허로 남은 채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상하이, 홍콩에 버금가던 번영의 황금도시 지우펀(九份)



지우펀과 진과스는 과거에 금광이 발견된 황금도시로 함께 등장하는 도시입니다. 


지우펀(九份)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오래전 이 곳에 아홉 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필요한 물건들을 아홉 가구가 함께 구매해 나눴다고 해서 아홉 구(九), 나눌 분(份) 이렇게 지우펀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1890년대 지우펀 근처의 산속에서 금맥이 발견되면서 원래는 아홉 가구뿐이었던 산속 마을에 3000~4000명의 사람들이 몰려와 엄청난 규모의 마을이 형성되었고 이 시기가 지우펀의 첫 번째 번영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과스와 지우펀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여행지를 차례로 둘러보면 분명한 차이점이 보이는데요. 일본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진과스와는 달리 지우펀은 산 중턱에 홍등 거리를 포함한 상당한 규모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지우펀과 진과스가 이처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은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이 진과스와 지우펀을 관리하던 방식에 있습니다. 당시 진과스의 황금 채굴은 일본 정부가 직접 관리를 하였지만 지우펀 지역은 일본 광업 회사와 대만의 소수 사람들에게 채굴권을 주는 방식으로 관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지우펀에서는 대만 현지의 광부들이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우펀은 대만 전국 곳곳의 광부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들었습니다. 


그럼 여행 중에 만날 수 있는 멋진 야경의 홍등 거리는 언제 어떻게 생겨난 건지 궁금하시죠?  지금부터 그 이유를 간단히 소개해볼게요. 2차 세계대전 후 일본군이 대만을 떠난 뒤에도 지우펀 금광에는 상당량의 금광석이 남아있었어요. 그래서 지우펀은 광부들로 북적이는 마을로 계속 남게 되었습니다. 지우펀 금광의 황금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한순간 큰돈을 만질 수 있게 해 주었지만 광부들은 그 대가로 자신의 건강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오랜 시간 낙후된 광산 속에서의 작업으로 광부들의 수명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50세가 채 안돼 지병으로 사망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어요. 당시 이런 상황으로 광부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유행처럼 돌았습니다. 

 

[오늘은 있지만 내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有了今天, 不一定有明天]


오락과 여가생활에 씀씀이가 커지는 광부들 때문에 지우펀의 좁고 복잡한 골목길을 따라 다양한 유흥주점과 식당, 오락시설, 극장들이 하나둘씩 생겨났고 이때부터 지우펀은 대만에서 가장 번영하던 도시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지우펀 앞바다에서 언제나 화려한 홍등으로 번쩍이는 지우펀 마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 이 지역은 작은 상하이(小上海), 작은 홍콩(小香港)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네요. 현재 지우펀을. 여행하면서 볼 수 있는 지우펀의 아름다운 홍등 거리는 이렇게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에 진과스, 지우펀 광산의 자원이 대부분 고갈된 후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한동안 지우펀 마을은 폐허로 남게 되었습니다. 




바쁜아이가 진과스와 지우펀이 현재 세 번째 번영을 누리고 있는 여행지라고 소개해드렸죠? 마지막으로 그 이유를 적어볼게요. 지우펀과 진과스는 금맥이 발견되고 일본이 적극적으로 금광을 개발하면서 첫 번째 번영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일본이 떠난 후에도 대만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젊은이들이 지우펀으로 몰리면서 두 번째 번영기를 누리게 되고요. 


1970년대를 기점으로 진과스와 지우펀의 번영은 한순간에 몰락하게 되지만 약 20년이 지난 후인 1990년대 대만 정부는 이 지역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지우펀과 진과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등장하면서 다시 이 지역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지금은 대만 현지인들보다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해외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인기 여행지로 변모되었습니다. 특히 지우펀은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과 닮았다는 이유로 일본의 언론에 알려지면서 일본 여행객들과 한국 여행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사실 이 지역은 이 애니메이션과 느낌이 비슷할 뿐 실제로는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제작자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작품이 지우펀을 모티브로 한 것이 아님을 공식적으로 부인했으니까요! 


한때는 황금의 도시라 불리던 진과스와 지우펀은 현재 황금 때문이 아닌 여행업으로 세 번째 번영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다음번에 대만을 찾아온다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우펀과 진과스의 매력을 100% 즐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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