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by slow snail

바지, 티셔츠 심지어 양말까지

앞뒤 보지 않고 한 번에 쓰윽 입고 신으면 그만인

아들이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


샤워 후 덜 말린 머리가 밤새 휘몰아치는 바람에 날리는 모양새를 만들어 놓은 머리를 해가지고도

스스럼없이 등교하던 아이.


티셔츠 앞에 있어야 할 로고나 상표가 등뒤로 가기 예사고,

바지는 주머니에 뭐 넣으려고 보니 주머니 방향이 뒤를 향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심지어 양말뒤꿈치가 발등에 있는 경우도 있으니...


일일이 신경 쓰면 신경쇠약에 걸릴 판이다.


'...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뭐...-.-'




그랬던 아이가!!


집을 나서기 전 거울을 보고

급하게 빗에 물을 묻혀 뜬 머리를 가라앉힌다!


"빗에 물 묻히는 비법은 어떻게 알아?"


"이런 거야 뭐, 그러니까 나지~~."


아이는 무거운 인생에 웃음을 주려고 주신 선물 같다.


어제, 그저께 지난 하루하루를 돌이켜 보니,

아이들의 사소한 행동과 말들 앞에 무장해제된 웃음을 짓던 얼굴이 떠올랐다.


양육의 날들 가운데


엉뚱해서 웃고,

어이없어 웃고,

귀여워서 웃고,

기특해서 웃고,


속 터져서 헛웃음 웃고!!




물묻힌 빗으로 힘줘 눕힌 앞머리와는 달리

뒷머리는 난리가 났다.

엘리베이터에서 급하게 쓰다듬어 머리를 정돈해 줬다.

가족이란 말이야.
내가 모르는 뒷모습까지 봐주기 위해 있는 것 같아.

아침부터 깨달음이 막 인다.

가족이기에 가장 함부로 하고, 상처도 많이 준다고 하지만

가장 민낯의 나라는 존재를 알아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니 가족이다.

가족이기에 더 사랑하고 배려해야 한다지만

언제나 의식의 한 단계를 거쳐 대해야 하는 사이라면

가족이란 좀 힘든 것이 될 수도 있다.


늘 함부로 굴어서는 안 되지만,

미친 척 강짜 한 번 부려보고 싶을 때 부려볼 수 있는 관계, 그것이 가족이다.


아침 7시 30분에 깨워야 하는데 7시 40분에 깨웠다고 생난리를 치는 딸의 어이없음을 묵묵히 봐주고,

오후에 하교하면서 씩 웃으면서 들어와도 밉지 않은 관계.


가족은

나를 누르기도 하고,

나를 지탱해주기도 하고.


가족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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