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신분제

by slow snail

소설, 영화, 드라마 그리고 유명한 강연가 등 대중에게 인기가 있거나 잘 알려진 스토리에는 공통의 룰이 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였다."


그들의 시작은 평이함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보통의 삶도 가지지 못한 환경에 놓여있으나 의식은 평이함을 넘어선다.

그들의 저력은 정신력에서 나온다.

미약한 시작은 마이너스가 아니라 그들을 날아오르게 하는 긍정적 자극제가 된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의식과 태도이다.


나의 평이함 혹은 좀 부족하다 싶은 나를 둘러싼 물리적 조건은 축복도 저주도 아니다.

나의 의식을 돌아보아야만 한다.


의식과 태도에 등급을 부여해 본다.


주체적이고/

정의로우며/

성실하고/

재능을 계발할 수많은 기회를 가지며/

빵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부류


주체적이지는 않으나/

주어진 틀에 순응하며/

뛰어난 재능은 없으나/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부류


이리에 능하여 계산이 빠르고/

정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으나 실리를 추구하며/

경제력으로 승부수를 보려는 부류


이렇다 할 눈에 띄는 재능도 없고/

그날 먹을 빵을 걱정하느라

새로운 사고를 할 기회마저 가지기 쉽지 않고/

그리하여 알고리즘이 주는 기쁨대로 쫓아 사는 부류




사/농/공상 / & 무기력 부류 정도로 분류해 본다.


누구나 첫 번째 부류에 가 닿기를 원한다.

빵걱정 없이 하고자 하는 일을

스스럼없이 도전하고 성취해 나가며 기쁨을 느끼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역사 이래로 부류의 경계가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역사는 서로 다른 경계의 흐름의 기록들이다.


기록 가운데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사람들이 열광하는 스토리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이다.


무에서 유를 이루어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최고의 의식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에게 부족과 결핍은 장애가 아닌 딛고 올라설 디딤돌이다.


글과 정보는 이런 의식을 열어주는 통로로 예전에는 특정부류들만이 공유하며 공유한 이들만이 최고 의식의 태도를 배워가며 기득권을 유지했다.


역사의 발전은 이런 글과 정보를 편만하게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층의 단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왜일까?

구슬은 주어졌는데 구슬을 꿸 의지를 온갖 스마트 기기가 마비시켜 버렸다.


온갖 진위가 뒤 썩인 정보숲에서 알고리즘의 미필적 조종을 따라 떠다니다 보면 시간은 한정 없이 흐른다.


의지를 넘어선 클릭,

많은 것을 습득한 듯하나,

체화된 어떤 습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간들은 충만하나 허약한 시간을 만들어 간다.


유튜브도 모자라 쇼츠와 릴스, 틱톡 등 찰나를 가져가는 도구들이 너무 많다.


의식을 깨우지 않고,

눈 똑바로 뜨지 않으면 휩쓸리는지도 모르고 어느 틈에 휩쓸리고 있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마음이지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마음이다.


까닥하면 휩쓸리는 세상,

나는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하여 어떻게 세상과 관계를 맺으며 살 것인지?

를 곱씹어 생각하며 고고한 신분을 가지려고

글로 마음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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