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부서지는 오월, 어느 식물의 향기인지도 모를 꽃과 풀내음들이 들숨에 들어와 부푼 폐를 가득 메꾼다. 싱그럽다. 청바지에 티셔츠, 두툼한 백팩을 멘 청년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교복의 제한된 영역이건만 자신만의 개성을 여실히 나타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한 차림의 청소년들이 사랑스럽다. 알록달록 가방과 각종 학원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편의점의 다양한 간식거리들을 하나씩 입에 물고 무리를 지어 가는 초등학생들이 강아지처럼 귀엽다,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대한민국 한 가정의 엄마다.
이 역할의 무게를 알았다면, 과연 누가 엄마가 되기를 겁내지 않았겠는가. 겨우 10여 년을 길러놓고 보니 길가에 걷는 저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귀여운 아이들 뒤에 있는 태산 같은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 그림자에 나도 모르게 매번 감탄과 존경의 마음이 쏟구쳤다.
오늘의 이 모습을 길러내느라 보냈을 그들의 시간이 조각조각 보이는듯했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공감과 왠지 모를 으쓱함, 다가올 시간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
생명을 돌본다는 건 기쁨이자 고뇌다.
지난 5월 1일 둘째 녀석과 산책을 갔다. 걷는다는 행위 자체는 아이를 지루하게 했지만 온갖 생명으로 역동하는 산천은 예상치 못한 흥밋거리들을 제공한다. 그저 그 자리에 있어 움트는 초목들을 바라보며 아름답고 찬란한 변화에 눈물이라도 막 흘리고 싶은 마음을 아이는 모른다.
"엄마, 어디까지 갈 거야?"
"엄마, 산책 다 하면 나 간식 두 개 사줘."
"엄마, 너무 힘들어."
깊은 사색을 방해하는 아이가 야속하다.
"어? 이거 무슨 소리지? 이 소리는 누가 내는 소리지?"
정체를 잘 드러내지 않은 채 우는 새소리는 아이의 흥미를 잠깐만 붙들어 둘 수 있다. 산길 주변으로 피어있는 별사탕처럼 작은 하얀 꽃은 아이의 관심영역이 아니다.
그런데, 멀지 않은 거리에서 우리를 맞아준 산계곡이 아이의 온 마음을 끌었다.
산계곡을 졸졸 흘러내리는 물이 품고 있는 개구리알과 올챙이, 바로 그들이 12살 남자아이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한아름을 넘을 만큼 커다란 미루나무 한그루 아래, 그림처럼 예쁜 벤치가 놓여있다, 바람이 일렁이며 만들어내는 미루나무의 은빛물결이 눈이 부시다. 잠시 올챙이의 도움을 받아 벤치에 홀로 앉을 짬을 얻었다. (어쩌면 오늘의 산책은 여기가 종료지점이 될지도 모른다.^^;;)
길옆으로 바로 난 계곡으로 내려간 아이는 지난가을 떨어져 계곡의 바닥을 포근하게 만든 낙엽을 은신처 삼아 놀고 있는 올챙이들에게 스스럼없이 손을 뻗어 보기 시작한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위아래를 오르내린다. 수면 위로 조그 많고 둥근 입을 대고 뻐끔뻐끔하는 모습이 귀엽다. 물속에 있으면서 굳이 수면밖으로 입을 내고 뻐끔거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고 입이 어찌나 귀여운지 아이와 나는 연신 "여기 봐봐~!"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놀고 난 후 아이에게서 나올 말이 나왔다.
"엄마, 한 마리만 데려가서 키우면 안 돼요?"
집에 양서류먹이도 준비되어 있고, 안 될 건 없었지만 채집통도 준비해오지 않았는데. 데려갈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엄마 한 마리는 외로우니까 두 마리?"
내 그럴 줄 알았다, 이 녀석아~~.
어떻게 녀석들을 집으로 데려갈 수 있을까 고심하며 서성이던 아이가 누군가 버린 일회용 투명 음료수병을 계곡 어딘가에서 찾아왔다. 쓰레기 버리는 건 나쁜 일이지만 이럴 땐 고맙기도 하다고 둘이 입을 모았다.
물속을 새까맣게 졸랑거리며 노는 녀석들 중 어떤 녀석이 입양될지 기대된다. 음료수병을 물에 쑤욱 가라앉힌 후 스스로 들어온 한 마리, 음료수병을 휘익 재빠르게 휘저어 들어온 한 마리. 근데 한 마리가 들어와야 되는데 한 마리가 더 들어왔다는 이유로 총 세 마리가 입양결정 되었다.
올챙이들이 든 종이컵을 들고 조심조심 공주걸음으로 산길을 내려왔다. 올챙이를 돌보게 된 아이는 이제 지루해질 틈이 없다. 수시로 불러 올챙이의 움직임을 보라고 성화다. 동그란 몸집에 꼬리, 얇아서 배속의 내장기관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는 배, 입도 눈도 동글동글, 볼수록 귀엽기는 하다.
사실 둘째가 무언가를 기르려고 할 때는 허락을 잘 안 해주는 편이다. 신중하며 세심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돌봐 마지막에는 동물이 있어야 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데려다 놓기만 하고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매번 보다 못한 첫째와 내가 손을 댄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올챙이를 넓은 수족관으로 옮기고 수집해 놓은 돌맹이중 올챙이들이 은신하기에 가장 좋을 법한 돌을 골라 넣어 준다.
이름도 지어주었다. 처음 잡혀서 시작이, 마지막 잡혀서 엔딩이, 바위뒤에 숨는 걸 좋아해서 바우라고 했다. 그 녀석이 그 녀석 같아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했다.
하루 이틀, 제 노는 시간도 빠듯한데 이틀마다 한 번씩 물을 갈아준다. 수족관의 물을 반을 쏟아내고 반만 새물로 채운다. 베란다에서 화장실까지 왔다 갔다 하며 쏟을까, 깰까, 올챙이들 배수구로 흘려보낼까 노심초사 간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다. 이동하며 줄줄 흘린 물자국들을 말없이 훔치며 참을 인자를 새겼다. 밥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양을 주기에 좀 적게 주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이 몰래 들여다본 수족관에 먹이가 다 사라져 있는 걸 보고 아이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며 삼켜버린 간섭을 칭찬했다.
시간이 흐른다. 바쁜 일상에 올챙이들이 집에 있다는 사실도 깜빡 잊었다. 그러던 어느 오후 아이가 부른다. 한 마리가 뒷다리가 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올챙이 뒷다리는 기존의 피부조직을 뚫고 나오기 때문에 굉장한 고통과 아픔을 동반한다고 아이가 말했다.
"그래? 진짜야?"
"어, 3학년 때 동물의 한살이 때 배웠다니까! 그래서 지금 힘들고 아프니까 밥 많이 줘야 해."
음... 둥그런 배 뒤쪽 11시, 1시 방향쯤 양쪽에서 볼록하게 쏟아 나온 개구리의 뒷다리를 설명하는 아이를 보며 가슴이 살짝 뭉클해졌다.
태어나 목도 못 가누던 아이들이 목을 가누고, 옹알이를 하고 6개월이 될 무렵이면 고 보드랍고 몰캉한 분홍 잇몸에서 아랫니 두 개가 쏙 올라온다.
아이들은 잇몸이 근질근질하고 불편해 무언가를 자꾸 입에 물고 침을 흘리고 질근거린다.
그 무렵 남편과 나는 손을 깨끗이 씻고 엄지손가락을 아이에게 맡겼다. 그러면 아이는 꼬물거리는 손으로 엄지손가락를 쥐고 입에다 대고 몰캉몰캉한 잇몸으로 손가락을 질겅거리기 시작하는데, 그게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 우리는 서로 자기 손가락을 주겠노라고 우위선점을 위해 경쟁하곤 했다. 두 손가락을 아이 앞에 두고 아이가 먼저 잡아가 질겅거려 주기를 기다리곤 했다.
10달을 엄마 배속에서 지내다 태어나기 위해 산통이 오기 시작하면 아이는 심장이 멎을 정도의 통증과 고통이 있다고 한다. 의술이 발달한 요즘은 엄마들의 산통을 경감하기 위한 '무통분만'이라는 도움이 있기라도 하지, 오로지 홀로 이겨내고 건강히 태어나, 시기마다 이룰 과업들을 이루며 지금까지 멋지게 자란 아이다.
가끔 아니 너무 자주 아이의 그런 과정들을 묻어버리곤 한다.
말 안 듣고 놀기만 하려고 할 때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저렇게 놀기만 해서 요즘 같은 경쟁시대에 어디 가서 사람대접받겠어.'라는 불안이라는 관점으로 이 훌륭한 아이들을 주로 본다.
잘 먹고, 놀이터에 나가면 해 지는 줄도 모르게 뛰어놀 건강함과, 함께 놀 친구들을 가진 건강한 대인관계.
이 건강함을 학업이라는 것들로 덮어씌워 버리는 오류를 매일매일 범한다.
아이야~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래, 맞아. 내가 너를 그렇게 키웠으니, 너 또한
생명을 사랑하고, 공감하고, 돌봐주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그런 사람으로 자라다오.
네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힘을 가지고 '엄마, 아빠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의 힘을 더하여 그렇게 세상에 덕이 되는 사람으로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