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건 자주, 많이 하는 건가?
자주 많이 하고 싶어 지는 게 좋아하는 게 아닐까.
세부적인 계획을 짜고 살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빈도를 높일 수 있을 텐데, 굳이 좋아하는 일을 세부계획사이에 넣어 그것이 의무가 되게 하고 싶지 않다.
김명숙을 떠올리면 세 가지 키워드가 떠오른다.
책과 산과 물, 물 중에서도 민물을 좋아한다.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자신 있게 말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좋아하기는 하지만 많이 하지도 잘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세 가지를 입으로 뱉어내는 순간 누군가에게 나는 산과 물과 책의 전문가 비슷하게 각인되는 게 부담이다.
그저 일상 중 한가한 시간에 주로 이 세 가지 것들이 떠오르고 해 볼까 하는 생각이 주를 이를 뿐이다.
이걸 좋아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얼마 전 내가 사는 곳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를 알고 싶어 부동산 관련 책을 한 권 읽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은 부동산적 가치로는 뭐 하나 가치 있게 맞아떨어지는 게 없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이곳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살아온 이래로 이곳을 절대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산과 강과 비교적 한적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산책로는 시민의 쾌적한 공간을 위해 그 모습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 길이 품고 있는 지난 시간들은 변함이 없다.
그 길을 아장아장 걷던 아이가 이제는 덩치가 나보다 큰 아이가 되었고, 남편과 나의 머리 위로 흰 빛이 내려앉을 동안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 산책로는 내를 끼고 있고 좌우로 유력한 장군을 대동한 왕처럼 산을 끼고 있다.
해가 쨍한 낮 산책은 세상을 보게 하고
어둑어둑한 밤 산책은 나를 들여다보게 한다.
산책 중 좋아하는 일은
무심한 듯 피어 있는 야생화와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양켠의 산과, 산이 이고 있는 하늘의 시간 변화를 보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은 물소리를 듣는 것이다.
너비가 5미터는 족히 넘을 듯하고, 강심은 얕다. 강심이랄 것도 없다. 하천 상류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느라 굵고 큰 돌멩이들과 바위들이 곳곳에 있는 강폭에 흘러가는 물줄기는 1년 중 비가 많이 내리는 며칠을 제외하면 수량은 미비하다.
물은 모인다. 모여서 그 넓은 강폭에 한 줄기 물 줄을 만들어 간다. 물은 해수면의 평균을 맞추기 위해 중력이라는 에너지를 힘입어 모이고 흘러간다.
물의 전략은 단순 명료하다.
모인다. 모여서 굵고 성근 돌멩이 사이에 흐르다 조금씩 힘을 키워 졸졸졸 콸콸콸 모습으로 바꾸어 가며 제길을 간다. 물이 길을 만들어 가는 그 소리가 좋다. 물에게는 버거운 개척의 일이 나에게는 쉼의 길이 된다.
물이 만들어 내는 결은 시시각각 다르다. '졸졸 '과 '콸콸'의 두 언어 사이 간극을 메꾸어 낼 단어를 찾아낼 재간이 없다.
모이고 모여든 물이 강폭과 강심을 채운다.
모인 물은 쇳물을 녹여 만든 미끈하고 유연하게 밀도 높은 형태의 액체처럼 수면을 형성한다. 느끼지도 못할 바람결에 부드럽게 일렁이는 수면의 변화는 유연하지만 힘이 있다.
좁은 돌투성이 위의 물은 그 흐름이 경쾌하기도 하고, 때론 전투적이기까지 하다. 갈 길에 덩그러니 놓인 큰 돌을 휘감아 가기도 하고 넘어서며 일으키는 하얀 물보라는 제 몸을 산산조각 내어 잠시 위로 역류하듯 하여 다시 미끈한 물의 형태로 바꾸어 기어이 흘러가고야 만다.
자신을 품어줄 넓은 강폭과 강심에 이르러 비로소 물은 찰방 대며 숨죽여 든다.
물은 유순하며 순응하는 것의 명사로 물처럼 살라는 옛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물은 절대 유순하며 순응적이지 않다.
물은 제 연약함을 온전히 중력에 맡긴 채 묵묵히 가고야 마는 불굴의 힘을 간직하고 있다.
제 앞길을 막는 돌덩이에게 가차 없는 포효를 퍼부어 대며 기어이 흘러 자신을 품어줄 곳에 이르러서야 발톱을 숨긴 맹수의 부드러운 털처럼 수면을 부드럽게 탈바꿈시킨다.
적재적소를 공략하는 전략가이다.
옛말에 '요산요수'라는 말이 있다.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의 준말로 지혜 있는 자는 사리에 통달하여 물과 같이 막힘이 없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의리에 밝고 산과 같이 중후하여 변하지 않으므로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늘 옆에 있어 물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하게 된 나는 졸지간에 지혜 있는 자가 되었고 어진 자가 되었다.
천지간에 내 옆을 지키는 산과 강이 좋기만 한데,
품격까지 격상시켜 주니 산과 강을 좋은 친구로 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외려 더욱 가까이할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