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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Aug 14. 2023

가을 느낌

행복이 지속이 아니라 순간이라면 난 행복하다

에어컨을 켜지 않은 두 번째 밤을 보내고 있다. 

태풍 '카눈'이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갔고, 입추가 지났다. 

입추라는 절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가지고 있는 듯

그날을 기점으로 아침저녁 날씨가 미묘하게 다르다. 

보이지 않은 선을 폴짝 건너뛴 느낌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힘을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나가고 싶어지는 날씨다. 


새벽 5시 눈을 뜬다. 

새벽형이며 일찍 일어나는 일은 남들에 비해 잘하는 일이라 자신하지만, 

그것도 수면양이 충분할 때 이야기다. 

해야 될 일을 모두 미뤄둔 채 잠든 저녁뒤 맞는 아침이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어둠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다. 

츄잉 츄잉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간간이 들리는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무엇보다 입추를 지난, 가을 풀벌레 소리가 정겹다. 

빈약한 현실의 삶이 다 무마되는 듯한 행복감을 맛본다. 

행복은 지속이 아니라 순간이라면 나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 맞다.


7시가 지나고 곧 이어질 삶의 현장에서 마주칠 생활의 무게들은 그때의 일이다. 


오늘 아침 새벽 5시 30분 난 행복했다. 


"언제 행복해요?"라는 질문은 물리적 환경을 생각하게 한다. 

행복은 상기하려 하면 할수록 부족을 확인하게 되는 나에게는 다소 아이러니한 단어다. 

그러나 '행복해야지'라는 생각을 접어둔 채 그냥 묵묵히 살아낼 때 의외의 행복을 찾아낼 때가 많다. 

가령 창문을 열어두고 잠든 밤을 지나 맞이하는 어스름한 새벽의 풀벌레 소리, 

몇 종류의 새소리, 세상 편한 자세로 자고 있는 가족들의 널브러진 모습들은 그냥 미소를 짓게 한다. 

보듬어 주고 안아주고 볼을 비벼대며 그들의 수면을 더 편안하게 해 준 뒤 식탁 한켠에서 

기도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어둠이 더 많이 밀려날수록 

마음의 평온함은 분주함으로 바뀐다. 

하는 일들을 부산히 정리하고

일상을 위한 소소한 일들로 머릿속을 채운다. 

지금부터는 이 정적인 행복감을 마무리하고 몸으로 움직여야 할 때다. 

나의 움직임으로 너저분한 삶의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에너지를 내기 위한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이 움직임이 가족의 행복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쾌적해서 기분 좋아 행복하게 하고, 

음식으로 배가 불러 행복하게 하는

그렇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 늘 지속되지는 않는 게 문제지만... 이 마음이 올 때만이라도 온전히 즐기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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