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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Aug 16. 2023

불평이 감사를 넘어설 때

걷기-> 감정 정화 작업 -> ?

걷기는 운동이라는 말을 대신한다.

적어도 내가 사는 동네의 강변을 걷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걷은 사람들의 의상은 하나같이 스포츠 의류이다. 그들의 걸음은 파워워킹에 가깝다.

혼자 걷는 이든, 누군가와 짝을 이뤄 걷는 이든 동일하다.

8월의 산책로를 걷는 이들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리고, 운동이라는 목표에 근접한 자신감 있는 얼굴들이다.


나의 걷기는 운동은 아니고, 뭘까?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걸었다는 칸트의 산보는 무엇이었을까?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는 주로 산책을 했다는 헤밍웨이의 걷기는 무엇이었을까?


나의 걷기는 기도이며, 마음을 단단히 꼭꼭 눌러 다지는 행위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액자에도 새겨 걸고 마음에도 새기지만  유난스럽게 주기를 탄다.

호르몬의 영향일 수도 있고, 습관이기도 한 것 같다.


불평이 감사를 넘어설 때 나는 걷기를 갈망한다.

집 앞을 따라 뻗은 매일 산책로가 아닌 낯선 곳을 오롯이 걷기에 집중하고 싶어지는 욕망이 일어난다. 각 지역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무슨무슨 올레길을 가지 못해 온통 불행해진 사람처럼 훌쩍 떠나지 못하는 현실을 비관한다.

생각을 곱씹을수록 우울감은 깊어지고,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갑갑함은 당장 신발을 신고 집 앞의  산책로로 뛰어나가게 한다.


조금 숨이 트인다.

운동이 목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생각에 잠긴 채 걷는다.

얼마 전 지나간 태풍 카눈이 남기고 간 태풍잔해들을 보며 걷는다. 군데군데 패인 흙, 쓸려내려 온 죽은 식물들의 잔해더미, 물살의 힘에 의해 휘어진 난간 등을 보며 속으로 향하던 생각들은 사물들을 향한다. 수풀 속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던 플라스틱 병이며 스티로품들이 싹 쓸려 나와 한 곳에 모아져 있다. 이곳에 모이지 못하고 하구 쪽으로 더 흘러가 쌓였을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당장은 깨끗해진 산책로로 시원함도 느낀다.



숨이 트인다.

8월의 더위는 관념적인 우울감을 건너 걷는 육체의 불편함에 집중하게 하고 현실의 불편함을 넘어설  대안들을 떠올리게 한다.

조금이라도 빨리 현재의 걷기를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한다. 들어가서 먼저 시원한 얼음물을 마시고 샤워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오게 한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던 갑갑함은 희미해졌다.

침침하던 눈도 다소 맑아진 것 같다. 다시 글을 읽을 힘이 생기고 문장이 튕겨져 나가지 않고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그렇게도 하기 싫어 미뤄뒀던 설거지를 시작한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쌓인 싱크대의 정리를 왜 미뤘나 싶기도 하다.  쏟구치던 신경질과 우울한 마음들이 무색하다.


동네산책로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도 한 가지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아는 몇몇 올레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아이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지금부터 천천히 걸으면서 체력을 길러두자. 네가 조금 더 자라면 엄마랑 제주도도 걷고 지리산도 걸어야 하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 행복해진다.

그리고 정말 꼭 걸어보고 싶어 진다.

아니 꼭 걸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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