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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Aug 17. 2023

8월 어느 아침에

오늘 아침은 오렌지빛깔 세상입니다

구-구 구구  구구 구구구~


찌익~ 치이익!


새살새살새살~


삑삑 삐비빅


비둘기와 직박구리 소리를 제외하고는 알아듣는 소리가 없다. 

소리로 미루어 한 종류의 새떼가 베란다 바로 밖에 있는 살구나무 우듬지에 모여 앉은 게 틀림없다.

그들의 모습을 봐도 그들의 이름을 잘 모른다. 

한국에서 흔하디 흔한 박새와 참새 뭐 그런 새들이겠거니한다.


비가 조금 내린 흔적이 있는 창밖은 묘한 오렌지빛이다.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하루 중 해가 뜨고 지는 이때쯤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열 살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청마루에서 산수 두 자리 셈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떴는데, 꼭 지금 같은 오렌지빛깔로 온 세상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순간 숙제도 끝내지 못한 채 맞은 아침인 줄 알고 울음을 터트렸던 기억이 난다. 그 두려움과 막막함이란.


해 질 녘과 해 뜰 때의 묘한 닮음은 인생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치매어머니를 돌본다. 

어머니는 늘 누군가 당신의 옆에 있어 주기를 원한다. 많은 시간 함께하지만 항상 함께 할 수는 없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는 누군가 곁에 없을 때마다 늘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한다. 

함께하는 시간은 기억하지 못한 채 현재의 외로움만 서러움과 슬픔으로 쏟아내곤 한다. 


해 뜰 때와 질 때 하늘의 빛깔이 닮아 있듯이,

어머니의 행동은 점점 인생의 출발점이었던 아기였을 적을 닮아간다. 


그 긴 생을 한 번도 살아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먹는 것, 입는 것, 감정의 들쑥날쑥함을 타인에게 기대며 하루하루를 보내신다. 


어릴 적 숙제를 끝내지 못한 채 맞이한 아침의 두려움과 막막함은 지금도 동일하다. 

10살의 아침도 처음이지만

45살의 아침도 처음이기는 마찬가지다. 

인생의 초반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과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어머니의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남편과 나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힘을 발휘하며 살고 있다.


이른 아침 새벽이 주는 고요함에 위로를 받고,

어느 날 아침 비가 내리는 하늘과 구름뒤에서 떠오르는 해가 만들어내는 묘한 오렌지빛깔에 잠깐의 환희에 휩싸이면서, 그 힘으로 살고 있다. 


행복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행복은 돈으로 사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은 돈으로 환산되는 무한경쟁시대에

돈 벌 궁리는 하지 않고, 새소리 하늘빛에 마음을 뺏기고 행복을 논하니 돈으로 행복을 산 게 맞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너무 좋다."


글을 쓰는 내가 좋고,

아침이 좋고,

이른 아침을 준비하는 누군가의 탈탈탈탈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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