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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Aug 18. 2023

안전제일주의자가 살아가는 방법

소심하게 목소리 내보기

"꼰대가 뭐야?"

"음... 꼰대는 말이지..."


"아, 꼰대? 그거 엄마 같은 사람~~"

"아~~!!"


아는 무슨 아란 말이야? '엄마 같은 사람'에서 이렇게 명쾌한 의미전달이 이루어졌단 말인가?

둘째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도 전에 첫째의 명쾌한 답이 이어졌다.


'엄마 같은 사람'의 모습을 나열하면 어떤 모습이지?


그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마치 그 사람은 강도고 자기 집게손가락은 경찰용 권총이라도 되는 양 겨누는 남자다.(7)

매일 아침마다 커피 여과기를 사용했고, 늘 정확히 똑같은 양의 커피를 내렸으며, 그런 다음 아내와 커피를 마셨다. 컵 두 개에 한 잔씩 따르고 나면 주전자에 한 컵 분량이 남았다. 그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13)

사람들은 (...) 어떻게 커피를 제대로 내리는지 몰랐다. (...) 이제는 모두 컴퓨터와 에스프레소 기계를 쓰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펜으로는 글을 못 쓰고 커피 하나 제대로 내리지 못한다면 대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인가?14)

                                                     - 오베라는 남자 중에서 -

타인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남자.

현대인들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얼간이들'이라는 부류로 치부해 버리는 남자.

"이제는 좀 느긋하게 살면 좋지 않아요?"라는 말로 한평생 다니던 직장을 퇴직해야 했던 남자.


딸아이로부터 추천받은 책의 주인공 등장 부분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오베라는 남자의 시선에 많은 부분 은근한 공감을 보내는 걸 보면... 나한테 오베라는 남자의 성향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꼰대인가?


정의와 공정을 말하고,

성실과 인내의 미덕을 강조하며,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작은 행위에도 분노하며...


교훈을 삼아 너희는! 우리 집 구성원만큼은! 저러지 말아야지! 라는 말로 미루어 보아 그들을  얼간이 취급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게 꼰대의 이유가 되나.

타인을 '꼰대'라는 말로 벽을 쳐 버리는 부류의 사람들도 각자의 입장에 선 꼰대들이다.


체감상 거리의 아이들보다 많아져버린 듯한 반려동물들을 사람아이처럼 싸고 유모차 같은 탈것에 태워 산책하는 부류들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 정성 당신 부모나 사람에게 써 보시지!)


앞 철제 담장에 개들이 산책 중 매번 하는 오줌마킹으로 부식된 철제 담장을 변상해 달라는 유인물을 붙여야 한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기을 한다.


"엄마, 그건 개의 본능이야~"


"본능이든 뭐든 그건 개인적인 영역이지 공공기물에 냄새나게 이게 뭐야, 개 기저귀를 채우든지 정말 싫어."


나의 이런 성향을 알고 있는 청소년기의 아이는 어딘가 새로운 장소를 갈 때면 늘 나를 주의시킨다.


"엄마, 아~~ 무 말도 하지 마."

"알았어. 아무 말도 안 할게."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하는 엄마가 된다.






지난 세대의 가치를 강조하면 꼰대가 되고,

새롭게 생겨나는 시류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 개방적이며 진취적인 사람으로 대우받는 시대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를 논할 새도 없이 역차별이다.


평등이라는 단어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 세상.


그 평등이 결과의 평등에 기울어져 있음을 애써 보지 않으려 한다.

차별과 부류가 정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인간의 역량범위 밖이다. 누구라도 이 세상을 똑같은 결과의 평등 상태로 만들 수는 없다. 만들려고 한다면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시대가 될 것이다.


차별과 부류를 넘을 수 없다면, 기회와 공정을 기본으로 한 존중과 배려가 더 강조되어야 하는데... 추상적이지만 원론적인 문제 앞에 분노하는 나는 꼰대다.


오베라는 이 이야기 속의 남자의 꼰대성은 조금 다른 각도의 이야기로 전개되지만, 도입부의 이 오베라는 남자의 견해가 통쾌하다.


이야기 속의 오베라는 남자는 젊은 외국인 여자의 온정으로 꼰대성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따뜻하게 이생을 마무리한다.


사람과의 온정인 것이다.

온정이 들어오면 옳고 그르다는 개념은 차후로 밀려난다.

 

최근 들어 부쩍 무리대 무리의 대립이 많이 보인다.

원래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현재 그것이 지각되는 것인지,

실제 그런 분위기들이 더 많이 생겨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원칙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원칙을 가지고, 대립과 배척이 아니라 존중과 배려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너무 원론적이라는 거 안다.

수많은 상황마다 존중과 배려의 적용 모양도 가지가지, 그것들에서조차도 내가 옳거니 네가 옳거니 말들이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더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가

'평등'이 아니라

'존중'과 '배려'라는 단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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