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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Sep 08. 2023

치매 어머니를 돌봅니다

치매지만 패피인 어머니와 무까끼한 며느리

"아이고~, 니가 우짠 일로 왔노"

"저 매일 오잖아요, 잘 모르겠어요?"

"와~? 안다. 내 니 매일 오는 거 안다."


불리하면 아닌 척 하기 선수시다.


"밥은 먹고 왔나?"

"아이고, 니 얼굴이 훤하게 좋다~, 아이고, 얼굴 좋데이~~."


어머니는 나름 패션 피플이셨다.

지금도 패션 피플이다.

아무리 옷이 많아도 매일 입는 진분홍 샤랼라한 블라우스만 입고 계신다.

바지는 파자마 바지를 입더라도 상의만은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신다.


좀 씻고 갈아입을 때가 되어

다른 옷을 꺼내 입혀 드려도 이내 다시 좋아하는 진봉홍 꽃무늬 샤랄라 블라우스로 갈아입고는 한다.


아들 딸도 깜빡깜빡하고,

자신이 머무는 공간도 깜빡깜빡하는데

패션 감각만은 그대로다.


오후 일정이 없는 날은 후줄근한 바지에 면티를 입고 가기도 하고,

아이 등교 시킨 후 가느라 얼굴에 선크림도 제대로 못 바르고 갈 때도 있다.

그럴 때 어머니는 여과 없이 말하신다.

"아이고, 니 얼굴이 와 그 모양이고? 빠마도 좀 해야겠다."


톤업 선크림이라도 바르고 가는 날에 단박에 알아보신다.

얼굴 좋다고, 얼굴 좋다고~~



어머니가 앓고 있는 치매는 논리력만 없을 뿐 감각은 그대로다.

아들 며느리가 매일 와서 돌봐주니 집이 청소되고 음식이 장만되는 논리는 까맣게 잊고,

혼자 머문다는 감각만 살아남아 늘 외로움을 호소한다.


똑같은 말을 자꾸 묻는 통에 대답 안 하면 어른 우습게 안다고 역정 낸다.

"지금 똑같은 말을 몇 십 번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화가 나요."

"그게 내 병 아이가~?"


헉~! 이럴 땐 논리까지 완벽하다.


매일 아침 방문하면,

매일 아침이 새롭다.


누군지도 모른 채 문을 열어주고,

누군지도 모르지만 며느리에게 할 법한 질문들을 하신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매일매일 밥은 먹었냐고 하신다.

먹고 왔다고 하면 당신이 챙겨야 할 식사의무에서 놓여놔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의사를 밝힌다.

평생 자식 입에 밥 들어가게 하는 당신의 목표가 몸에 밴 행동과 말들이다.


"아이고, 얼굴 좋다."

"좋아요? 내가 보니 어머니가 더 좋아 보이는데요?"

"뭐가 좋아, 다 늙어빠졌는데..."

"아이다, 어머니 얼굴이 더 좋다. 이리 와 보세요. 거울 보고 사진 한 번 찍어요. 봐요! 어머니 얼굴이 더 좋네."


치매로 정신은 완전히 혼돈상태를 겪으시지만,

육신적인 지병이 없는 어머니는 치매정도에 비해 집에서 돌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신의 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집을 떠나 요양시설에서는 반나절을 못 버티신다.

기억력이 아주 없는 상태에 비해 식사만큼은 잘 챙겨 드시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셔서,

현재로서는 매일 일정 시간 집을 방문하여 돌봐 드리는 상황이다.


1년 하고 5개월째 나는 치매 어머니를 돌본다.


어머니의 육신은 아직도 정정하다.


매일 반복되는 이 일이 쌓일수록 두려운 마음이 든다.


어머니의 끝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끝을 기다리면서도 끝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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