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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Oct 04. 2023

변심

한 여름의 옷가지들.

손이 가장 잘 닿고, 눈에 가장 잘 닿는 곳에 익숙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것저것 들쑤셔봐도 마땅히 손이 가는 옷이 없다.

지난봄, 여름으로 바뀌면서 미처 넣어두지 못한 긴팔의 옷, 센터자리의 한여름옷을 비집고 끄집어낸다.  오래 묻힌 섬유유연제의 냄새가 낯설다.


준비할 새도 없이 여름이 갔다.

좋다 싫다 하면서도 조금씩 맞춰가며 익숙해지던 사랑하던 그.

그의 단순 변심으로 이유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받는 냉담함처럼, 가을아침 기온은 준비할 새도 없이 뚝뚝 떨어진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며 조금씩 변화의 흔적을 남겼을 테지.

무심히 뜨고 정오의 내리 꽂히는 열기에 그만 눈이 멀어, 그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감지했다 한들 나는 그의 떠남을 어찌하지 못한다.


뜨겁던 여름,

할 수 있는 한 몸의 열기를 발산할 수 있게 디자인된 여름옷으로, 영원히 지속될 더위인양 더위를 한대시하며 보낸 8월이었다.


더위는 온 데 간데 없이 서늘한 한기만이 감돈다.

새벽 6시가 지났건만 사위는 컴컴하기만 하다.

그가 떠난 어둠의 자리에 쓸쓸함이 들어왔다.

벗어났다는 후련함보다 아쉬움이 남는다.


그를 잘 보내고,

가을을 받아들인다.


긴 연휴 끝에 그를 보낼 의식을 치른다.

한여름볕 가득 머금은 집안 먼지를 쓸고 닦아낸다.

얇고 짧은 옷가지들을 다시 예쁘게 접어 구석진 자리로 넣어둔다.


가을옷 앞에 낯섦과 설렘을 느끼듯,

이 여름옷들 역시 설렘으로 만날  7월을 위해서 예쁘게 예쁘게 개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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