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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Oct 14. 2023

공통점

걷기와 글쓰기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깐  졸았다. 일어나 어질러진 집 때문에 신경질 섞인 잔소리를 퍼붓는다.


"엄마는 매번 잘 자고 나서 짜증이야!"


언제나 정돈된 있기를 바라는 불가능한 꿈은 언제나 약간의 신경질을 생산해 낸다. 아주 꿈을 내려놓으면 이런 불쾌감은 없을 텐데.


나에게 꿈과 목표는 이런 종류였다.

뭘 좀 해보려고 해도 걸리적거리는 게 너무 많은 것.

'정리정돈된 얼음알 같은 집'은 수시로 드나드는 4인가족의 소소한 생활과, 모두 다른 청결상태에 대한 기준으로 성취의 어려움이 있다.


무기력해지고 기분이 다운되는 오후 4시의 기분을 변화시키기 위해 걷거나 도서관에 머물러 있고  싶지만 속속 돌아오는 아이들 간식을 챙기고, 일주일에 일 없는 며칠만은 저희들을 반가이 맞아 주기를 바라는 아이들의 바람을 들어줘야 해서 안되고.


이렇게 좋은 가을에는 몇 날 며칠이고 한적한 길이 있는 곳을 찾아 걷고 쉬고 걷고 쉬고 하고 싶은 바람은 일상의 필요를 위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꿈이다.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


뭐, 대단한 바람도 아니구먼 저지당한 목표(욕구)는  오늘처럼 몸이 힘겨운 날은 고단한 몸보다 더 큰 낙심의 원인이 되어 돌아온다.


이때부터 기분을 쥐고 흔드는 단 한 문장은...


"나는 왜......"


아마 '나는 왜'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2박 3일은 내가 안 되는 이유와 불만거리를 찾아낼 수 있을 태세다.

멈춘다.

갈 수도 있고 멈출 수도 있지만 멈춘다. 아마 글로 나의 속마음을 펴보는 일을 하지 않던 과거였다면 멈춤보다는 지속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글을 쓰는 것은

'그러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를 쉬이 삶으로 불러들여 적용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양말목이라면 속이라도 뒤집어 보여줄 텐데.'

제 속마음의 진실을 면면히 밝히지 못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말이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돈도 안되고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글 쓰는 행위의 이유는 명백해졌다.


내 마음을 세미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방향성이 없던 마음이 글을 따라 방향을 잡아가고,

좌절된 꿈은 글을 따라 다시 피어난다.

외롭던 마음은 글을 따라 견딜만해진다.

글을 따라가며 삶에 포진해 있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어떤 것들을 보게 된다.


오늘 하얀 모니터에 깜빡거리던 점을 노려보며,

 '내가 왜 꼭 이 행위를 해야 할까?

'왜 이 도전을 이어가야 할까?'

그만해야겠다는 포기의 이유로 시작된 마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 바뀌었다.


 좋은 날, 자박자박 걷는 내 발소리와,

부드러운 바람에 한가로이 제 몸을 맡긴 가지들의 유연함을 보는 일을 좋아한다.

생각 조각들을 단어 조각으로 생산해 내고 엮어내는 이 일은 마치 한적한 오솔길을 걸어가는 일과 같다.


나서기는 어렵지만

나서기만 한다면 어김없이 행복해져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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