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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Oct 19. 2023

빨간불

빨간불은 어떤 상황에 경보를 알리는 색이다.

내 삶에 빨간불이 켜졌다.

글쓰기가 시들해졌다.

빨리 달아오르고  시드는 사람들의 속성을 은근히 하대하는 나도 별 볼일 없다.


걷기를 하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산책로에 보이는 사람다.


봄, 가을 중에서도 전형적인 봄가을 일기가 되는 날은

산책로가 사람들로 붐빈다.

봄, 가을 중이지만 조금이라도 덥거나 쌀쌀해진다 싶으면

비로 쓴 듯 한산해진다.


달면 삼키고 뜨거우면 뱉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됨이 느껴진다.


기우는 가을 탓인가.

그 사람됨이 참 쓸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도 불행도 언어를 따라 실체를 획득한다는 말을 이슬아작가가 말했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또 한 번 감지된다.


최근에 나의 감정들은 어떤 종류의 것이었나를 되짚어 본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의 상태에 가깝게 지루하다는 느낌이다.


지루하지만 해야 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감각에 가까운 요즘이라고 했는데, 무감각하지도 않다.

무감각했다면 해야 될 일을 기계처럼 착착 해냈을 것이다.

질질 끌려가며 해야 될 일을 해내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분명 어떤 감정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다.


이 감정은 뭘까?

어떤 단어로 이 기분과 감정을 표현할까?

내가 내어 놓을 수 있는 감정은 기껏 '기쁘다, 슬프다. 화난다. 즐겁다' 정도다.


이렇게 빈약하니 내 행복도 불행도 실체를 찾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빨간불이 켜졌다.

빨간불을 끌까? 좀 놔둘까?

빨간불이 켜진 채로 무작정 문장들을 쓸어 담는다.

가을이다.

책 읽기 좋은 때다.

멍 때리기 좋은 때다.

마음껏 빨간불을 켜 둘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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