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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Nov 02. 2023

핑계대기 좋은 날

물이 보여준 것은

매일 하는 일을 그냥 매일 기계처럼 할 때  차라리 기계라면 좋겠다.

사람이니 하기가 싫다.

난 왜 이렇게 하기 싫은 게 많을까.

하기 싫은데 해야 되는 이 상황에 절묘한 핑곗거리가 생긴다.


아이들에겐 어지간한 이유론 일상을 멈추지 않는 것을 종용하면서, 나 그냥 핑계 대고 일상을 빠져버리고 싶다.

무한히 게을러지고 싶다.

동물들은 그런 게 있다 했다.

겨울잠을 자기 위해, 혹은 수 만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철새들의 긴 여정을 위해  먹고 몸속에 지방과 에너지를 축적하는 일.

마치 그들처럼 온몸을 쉬어가며 세포 구석구석까지 쉼의 에너지를 여지없이  축적한다.


이유 없는 이 휴지기.

혹여 프로이트가 말한 저 깊은 무의식 속에 어떤 이유가 있으려나.


물을 좋아한다.

찰랑거리는 파도가 있는 바다보다  강을 좋아한다.

강을 조용히 보고 있으면 언제나 위대하다.

작은 지방하천의 물도 위대하다.

그들은 유유하다.

비가 내려 수량이 많을 때는 사나운 물결로 흘러내리고

비가 귀한 가뭄 때조차 강바닥 어딘가를 통해 흘러내리고 있다.

물은 핑계가 없다.

어느 상황 어떤 장애에도 제 몸을 갖가지로 빠꿔가며 끝내 흘러가는 그 물이 좋다.


아이가 열이 난다.

멈춰버리고 싶은 일상에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핑계뒤에 숨기 딱 좋은 날이다.


물을 생각한다.


유유히...

그래, 유유히 흘러가는 거다.

물처럼 삶도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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