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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Nov 22. 2023

감기

곱아진 허리를 펴고 흰밥을 푹 삶는다.


1년에 한 번은 하고 넘어가는 몸살감기다.

결혼하고 제일 서러운 눈물을 흘릴 때가 몸져누울 때다.

아플 때 나름 애쓰지만, 나를 돌보는 가족의 손길이 편찮다.

나는 그들을 돌보는 일이 익숙한데,

그들이 나를 돌보는 일은 익숙하지가 않다.


몸살의 절정기가 휴일과 맞물려 꼬박 앓았다.

월요일,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 약 기운으로 버텨낸다.


푹 자고,

소염진통제의 기운이 돌면,

아픈 나를 의식해 나름 조심스럽게 생활한 가족의 불편한 흔적들을 정리한다.

그러곤 이내 다시 잠들고,

약을 먹고.


감기는 흔히 하는 질병.

곰곰 생각해 보니 엄마가 감기로 아팠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엄마를 위해 죽을 끓여 본 적도 없다.

엄마가 아프지 않았던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당신의 몸이 아파도 자식 생활에 불편함을 주지 않으려

아픔을 삭이고 움직였을 것이란 사실을 내 나이 40 중반에 깨닫는다.


가슴이 아리다.

그 엄마가 지금 여든... 닳을 대로 닳은 관절을 어쩌지 못해 지팡이를 의지한다.

감기로 인한 몸살보다 더한 아픔이 가슴을 저며온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열에 들뜬 얼굴에 차오른다.

이불을 덮어쓰고 끄억끄억 운다.

가족들에겐 감기로 인한 콧물이요, 몸살로 인한 고통의 호소라는 핑곗거리가 있다.


한바탕 울고,  일어나 밥을 삶는다.

백미를 뜨거울 물에 폴폴 끓여 자작한 된장과 함께 아플 때 약 먹기 위해 한 그릇 후딱 먹기 좋게 만든  엄마의 음식이다.


꽉 막힌 코는 미각을 전혀 느낄 수 없지만,

앉아서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는 흰 죽과 된장을 한 그릇 먹어낸다.

약을 먹고, 약기운을 빌어, 아파서 비운 공백동안 인스턴트 음식들로 끼니를 때운 흔적들을 정리해 나간다.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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