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겐 날 위로할 의도는 하나도 없었다.
그는 삶에 충실하였을 뿐이었다.
자신의 의도는 하나도 없었을 삶의 출발부터가 그랬다.
툭 떨구어진 그는 떨어진 그대로 시간을 견뎌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르게 간질거리던 공기에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고, 연이어 스스로 몸을 늘여갔다.
그 시간도 그에겐 의도가 없었다.
늘어가는 빛과 간질거리는 공기에 몸을 내맡겼을 뿐이었다.
그가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의 옆을 수십 차례 지났다.
그와 나의 접점은 그 길이 전부였고,
오직 나의 의지에 따라 그와의 접점은 성립되었다.
그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가고 가지 않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음에 나는 늘 우위를 차지했다.
햇살과 바람, 기온의 고저 여부에 따라 발길의 행보를 통제할 수 있었다.
그는 뜨거운 햇살과 버거운 비바람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그는 자랐고, 여물어갔다.
8월 말 즈음부터 숲길 옆, 낮은 키의 풀 무리가 마음을 끌기 시작했다.
가시여뀌다.
무심히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은 평화로웠고,
자잘한 가을비에 고스란히 몸을 내맡긴 가시여뀌의 군락지는 초연함이었다.
가는 길을 멈춘다.
서서도 보고, 쪼그리고 앉아서도 본다. 가시여뀌의 군락지를 한참이나 본다.
어느 어부가 배를 타고 가다 우연히 닿은 곳이 복숭아꽃이 핀 아름다운 마을이었는가. 그가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왔을 때 세상은 십수 년의 시간이 흘렀다던가.
나는 그만 시간을 잡아채고 싶어졌다.
숲길 옆 군락을 이루고 선선한 가을바람에 몸을 내맡긴 가느다란 가시여뀌를 보는 일이 십수 년의 시간으로 대치되었으면 싶었다.
위로였다.
시간을 충실히 살아낸 자가 온몸으로 뿜어내는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