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버거운 선을 밟고 넘어설 때

by slow snail

50분 수업, 10분 휴식.

학창 시절 휴식시간 10분에 어떤 모습이었나?

50분 동한 들었던 내용의 교과를 스르륵 넘겨 볼 때도 있었고(십여 년 이상의 학창 시절 동안 손에 꼽음) 간신히 참아냈던 잠에게 자리를 내주며 엎드리어 잠시 자기도 한다.

말 섞고 싶은 친구 옆자리로 가 짧은 수다를 떨기도 한다.


읽고 쓰는 일에 효율성을 높이고자 시간을 블록으로 정해 보기로 한다.

30분 집중, 5분 휴식.

딱 부러진 시간 개념 없이 일을 덩어리로 처리하는 일상이 몸에 배었다.

오직 30분 책만 읽는 일이 버거웠다. 장시간의 책을 읽지만, 스마트폰 없이 오직 필기와 읽기만으로 30분을 채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어느덧 모르는 단어를 찾기 위해 책장에서 눈을 돌려 스마트폰을 찾거나, 이내 마음을 어딘가로 빼돌리는 일이 그 짧은 30분 안에 번번이 일어나곤 했다.


오전 7시가 조금 넘어 등교해서 심자까지 하면 11시에 교문을 나서는 첫아이의 하루가 대단하게 보이는 순간을 경험했다. 순공시간이 몇 시간이며, 어떤 날은 효율이 좋아서 뿌듯하다거나, 끝날 때까지 긴 시간 집중이 안돼서 순공시간이 없었다며 속상해하는 딸아이의 말이 몸으로 경험되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다 집중이 안될 때면 빨래 한 번 돌리고, 읽다 집중이 안 되면 설거지 해 두고 이런 식으로 집중력의 한계를 만날 때면 우회를 하며 집중력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식으로 집중을 하는 편이었다.

이게 좋은 방법인건 맞지만 수험생처럼 처내야 할 양의 학업량이 많을 때는 불가능하다. 머리가 꽉 차 부하가 걸려도 집중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그럴 때 어려워지는 거다. 한계를 마주하게 되고 버텨 넘어가느냐 머물러 유지하느냐 정해진다.

해야 될 일을 꾸역꾸역 해내야 할 때를 떠올리면 나의 아이들과 학생들에게 밀어붙일 수가 없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만의 싸움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욱 잘 버텨내라고 격려하고 싶은 마음과 고통의 짠함에 할 말을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학생은 학생이니까 공부의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건 공부이전에 앞으로 만날 수많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공부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를 자주 상상한다.

엄마라서 집안일에 드는 시간이 공부에 방해가 될 때 자주 한다.

그럼 생각한다.

내 딸아이가 과부하가 걸린 머리를 싸매고 책상에 앉아 고군분투하듯이,

너무너무 하기 싫은 하찮아 보이는 집안의 일들을 무던히 버텨내며 해보자고 나를 설득한다.


나는 오늘도 하찮아 보이는 일들을 착착 하나씩 클리어해 간다.

(근데, 확실히 버티기가 수월한 영역이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몇 날 몇일고 매달려 수학 문제 하나 푸는 일은 버텨내는데, 동네 앞산 오르는 일은 죽어도 못견디겠단다.

나는 수학문제는 못풀어도 기어서 올라가더라도 산이 있으면 오르는 일은 버텨낸다. 이것이 좋아하는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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