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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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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snail
Aug 4. 2023
바스락바스락,
흰 빨래가 널린 베란다가 환하다.
야외에서 일을 해야 하는 어떤 이들에게는 어려움이 될 날씨다.
그러나 빨래를 말리는 날에는 더없이 좋다. 흰 빨래는 햇빛에 더욱 희게 빛난다. 바람에 빨래가 말라가고 마르다 못해 빳빳해진 빨래를 볼 때 은근한 행복감이 들곤 한다.
전업주부라 하기도 커리어 우먼이라 하기도 애매하다.
살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일에 조금 더 내기도 한다.
어느 순간 어느 한쪽으로 기운 다음에야 모자란 시간에 생긴 허점들을 매우려 다시 시간의 균형을 잡아본다.
살짝 방심한 사이 집안에 질서들이 사라졌고,
사라진 질서는 불안증과 짜증을 유발했다.
해야 될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지만 무너진 질서는 광증을 더 유발할 뿐이다.
이럴 땐 그냥 하면 된다.
밀린 빨래들을 차례대로 한다.
말리고 개고, 말리고 개고 세탁실이 훤하게 비어 간다.
장소가 비고 멀겋게 될 때 말할 수 없는 희열감을 느낀다.
손을 타고 정돈되어 비어진 공간이 좋다.
일과 살림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늘 스스로 무게를 재어본다. 얼핏 생각해 보면 바로바로 보상이 주어지는 일에 우선순위와 비중을 두게 된다. 그러나 살림을 만졌을 때 얻는 기쁨은 일해서 받는 보수와는 다른 행복감을 준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어중간하다.
살림을 통해 얻는 기쁨을 만끽하다 보면 얇아져가는 통장의 잔고로 마음이 어렵고,
보수를 위해 일을 하다 보면 어질러져 가는 집안에 불안이 밀려든다.
두 경우다 불안으로 종결되는구나.
'불안' '양다리'
사는 일은 언제나 불안을 안고 양다리를 걸치며 사는 일 같다.
평안, 정체, 불안, 움직임, 다시 평안.
즉 불안의 지점에 있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움직임의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불안이라는 부정적 개념이 긍정적 개념으로 나아가게 하는 시발점이 된다.
불안을 안고 아슬아슬 줄타기하듯 양다리의 시간도
살아내야 하는 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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