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난지를 점령한 개망초에게

무심함이라 함부로 말하지 말라

by slow snail

여름밤에 굵은 소름을 뿌려 놓는다면 이런 모습일까.

레트로 감성의 주황색 가로등아래 난 오솔길.

키 큰 벚나무가 양옆으로 길게 줄지어 선 오솔길의 그늘아래로 무심히 난 빽빽한 개망초의 잔잔한 흰 빛이 예쁘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는 구불구불 좁은 오솔길을 겨우 남겨놓은 채 무릎을 넘는 개망초가 길옆으로 양립해 있다.


무심히 난 잡풀.

잡풀들이 바람에 일렁이며 움직이는 모습이 어여쁘다.

무심함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말, 글, 사진 그 어떤 매개체를 이용해도 잡아둘 수 없는 아쉬움이 크다.


지금 바람 일렁이는 여름밤,

흙냄새와 적당한 습기로 낮에 달구어진 열기와 뒤섞이며 온몸을 휘감는 눅눅진 냉기를 느끼며 잡풀 무성한 오솔길을 걷는다.


무심함이 만들어내는 극치의 길이다.


무심함... 무심함...

무엇이 무심하단 말인가.

달빛 희끄무레한 이 밤이?

눅눅진 바람에 일렁이는 저 개망초들이?

무엇이 무심하단 말인가?

창조 이래로 단 한 번도 그 틀을 벗어나지 않고 운행되는 달의 차고 이지러짐.

기압의 규칙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공기의 움직임.

때가 되면 피고 지는 개망초.

무엇이 무심하단 말인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고,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루틴을 만들어가는 그것들에 나는 왜 함부로 무심함이라 하였는가.

그 어떤 때에도 멈추지 않았던 자연의 메커니즘을 두고 감히 무심함을 남발한 나는 사람이다.

그들이 무심히 만들어내는 피고 짐을 , 차고 이지러짐을 흉내내기 위한 루틴을 만들어보겠다 안간힘을 써야 겨우 규칙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다 한 순간 일렁이는 작은 바람에도 마음을 쿵 떨어뜨리고 허무의 상태로 돌아가 버리는 사람이다.


무심함이 아니었다. 잡풀이라 부르기도 하고 들꽃이라 이름하는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무심함이 아니라 주어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고 제 때에 최선의 모습으로 살아내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리 아름다웠구나. 일렁이는 바람에 몸을 내 맡기는 풀들의 움직임이 말이다. 함부로 무심함이라 부르지 말라.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함부로 연탄재 차지 말라, 너는 그토록 빨갛게 타올랐던 적이 있느냐는 물음이 나에게로 왔다.
함부로 무심함이라 말하지 말라. 여름 잠깐 피었다 질 제 삶을 위해 처절히 뻗어나가려 안간힘을 다해 피어나는 자잘한 개망초들의 움직임을 너는 감히 상상이나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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