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십시오~~~!!"
중년의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by slow snail Oct 28. 2024
어느 라디오에 "일어나십시오~"라는 코너가 있다. 주저하거나 게으르거나 용기가 없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해야 될 일을 하지 못하는 청취자의 사연에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를 해주는 코너다.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지친 월요일 오후, 도로 위를 달리면서 비에 젖어 나뒹구는 나뭇잎에 마음을 툭 떨구어 버렸다. 게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하지만 쓸쓸한 바이올린 선율은 떨어진 마음을 흩어버리기까지 한다.
나의 하루는 아이들의 등교를 도와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모두가 나간 집을 마지막으로 훑어보고 치매 투병 중인 어머니의 약과 일상을 돌보기 위해 가깝지 않은 거리를 통과해 간다. 나의 온 힘을 다하는 일은 아니지만 장기간이 되어가는 이 일에 무기력해진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한동안 마음을 못 잡았다. 마음을 못 잡아도 멈출 수도 휘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마음을 다해 잘 하기는 애당초 없는 마음이었다. 그 없는 마음에 죄책감이 들었다. 죄책감을 내려놓고 나의 삶을 저당 잡았다는 원망하는 마음 혹은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으로 타협을 보기로 했다.
오전 일과가 끝나면 간간히 잡힌 파트잡으로 시간을 보내고 남는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금맥을 찾듯 찾아내어 산을 오른다.
늦은 오후가 되면 아이들 픽업과 저녁을 준비한다.
중간중간 도로를 이동하던 중 신호를 기다리는 짧은 몇 분의 시간 멍한 상태가 된다. 멍한 상태는 쓸쓸함을 몰고 온다. 사는 게 무엇인지, 하루가 온통 조각난 것 같은 이 느낌으로 사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하루종일 덩어리가 큰 하나의 일에 매달리며 사는 직장인의 삶을 살았더라면 자잘하게 보내는 일과의 삶을 동경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가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선망의 길이기도 하니까.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속말들이 오고 갔다.
"하루종일 종종 거리는 삶에 나를 위한 조각은 몇 조각이나 되나"
"너를 위한 삶을 살 수 있으면 뭘 할 건데?"
"글쎄.......,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그러면 행복할 것 같니? 너 하고 싶은 대로 사는 하루의 끝은 행복감으로 충만할까?"
"잘 모르겠어..."
"아이들이 캠프 가고, 남편이 연수 가고 그래서 맛보던 꿀맛 같던 시간들의 저녁에, 어떤 느낌이었지?"
"음.... 그래, 자유를 만끽해서 행복하다고 좋았다고 했는데, 진짜 마지막은 가족을 그리워하는 감정으로 마음의 문을 닫았던 거 같아."
맞다. 나는 가족으로 인해 힘들어하면서, 가족으로 인해 힘을 얻는 사람이다.
나만을 위한 여행과 쇼핑과 일만 할 수 있었던 결혼 전의 내 삶도 정말 행복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가보지 못한, 소유하지 못한 것의 동경인지도 모른다. 일상의 지루함, 현실의 고단함 그 같은 감정들은 진득하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습성으로 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이 불행한 게 아니라, 반복되는 삶에 대한 인간성의 반응이랄까.
나를 지루하게도 하고, 힘들게도 하고, 지치게도 만드는 일상이 사실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던 것이다. 내 감정에 대한 핑곗거리가 되어준 일상이 나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