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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서다

by slow snail

2024년 12월 16일 낮 12시 05분.

경계를 넘다.


지난 4월 중순, 참꽃 명소로 이름난 비슬산을 오르면서 체력의 한계를 만났다. 근근이 오른 높은 산 위, 분지처럼 오목한 넓은 터에 포옥 안기듯 피어난 참꽃의 무리는 참말로 어여뻤다. 목이 넓은 대형 항아리 속에 담긴 분홍꽃단지 같았다. 그때 느꼈다. 저 산밑에서 이어지는 생활이 지금과 같다면, 내 두 발을 디디고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더 이상 확장해 나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후 짬짬이 시간을 내어 산을 오르며 체력을 키웠다. 계기는 체력향상이었지만, 오르내리는 동안 마음밭이 갈아엎어져 마음까지 제법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명백한 12월의 도래를

도래하지 않을 것처럼 살았던 사람들, 혹은 도래를 예측하며 죽을힘을 다해 살았던 사람들. 어느 경우든 일종의 헛헛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삶인 것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헛헛함이 삶인 것을 자각한 순간, 이 채워져 있음을 보게 다.


소금기 가득 머금은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흘려내려 눈을 따갑게 만들던 여름산의 치열함.

계절이 바뀌는 산의 체취를 아는 자에게, 산을 찾을 짬을 주지 않는 밥벌이의 각박함.

지금처럼 사는 것이 맞는지 스스로 갈팡질팡 하던 불안의 시간들.

버거웠던 시간들이 흘러내려 밟힌 12월의 산길을 드나들면서, 이 길이 참으로 고마웠다.


매번 걸었던 산길, 그 길 막바지에서 오늘은 한 걸음 더 나아가보고 싶었다.

나는 경계를 넘기로 했다.

새로운 목적지에 가 닿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중간중간 겨울 햇살이 깔린 산길을 기분 좋게 걷는다.

'지금껏 다녔는데 조금 더 가보는 길이야...' 라며 얕잡아 보았지만 높은 산이나 낮은 산이나 정상에 다다를 때 반드시 마주치는 '깔딱 고개'는 있다. 그 앞에서 나는 다시 겸손해진다.

정상에서 양껏 쏟아지는 겨울 정오의 햇살을 받으며 준비해 간 따듯한 차 한잔을 마신다.

사방으로 펼쳐진 시가의 조망이 벅차다.

묵묵히 살아낼 수 있어서 참 감사한 발밑 세상이다.

한동안은 오늘 넘은 이 경계의 영역을 드나들며 행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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