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은(현금은) 늘 도망가

by slow snail
눈물이 난다 이 길을 걸으면
그 사람 손길이 자꾸 생각이 난다
붙잡지 못하고 가슴만 떨었지
내 아름답던 사람아
사랑이란 게 참 쓰던 거더라
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더라
이별이란 게 참 쉬운 거더라
내 잊지 못할 사람아아
사랑아 왜 도망가
수줍은 아이처럼
행여 놓아버릴까 봐
곡 움켜쥐지만
그리움이 쫓아 사랑은 늘 도망가
잠시 쉬어가면 좋은 좋은 텐데


- 사랑은 늘 도망가 가사 일부 -

유난히 길었던 여름도 갔다.

계절이 바뀌는 그 간극에서는 마음이란 게 가지런하기가 어렵다. 그맘때 들리는 라디오의 노래는 마음인지 머리인지 모를 나를 훅 치고 들어오는 일이 잦아진다.


어느 무심한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로이킴의 감미로운 목소리,

"눈물이 난다 이 길을 걸으면~~~" 그 첫 소절이 애잔하다.

그다지 가슴 저린 사랑의 소유자도 되지 못했던 내 젊은 날은 순식간에 노래 가사 속에 오버랩되어 가슴 절절한 사랑의 주인공이 된 듯하다.

그리고 가사는 이내 개사가 된다.

눈물이 난다 이 문을 열면은
그 사람 손길이 자꾸 생각이 난다.
붙잡지 못하고 가슴만 떨었지.
차갑기만 한 사람아.
현금이란 건 참 희한하더라
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더라
지출이란 건 참 쉬운 거더라
피치 못할 사정아~
현금아 왜 도망가
수줍은 아이처럼
행여 놓아버릴까 봐 꼭 움켜쥐지만
욕망이 쫓아 현금은 늘 도망가
내게 머물러도 좋을 텐데.

간간히 하는 파트잡으로 통장에 조금씩 쌓이는 돈에 재미가 있었다. 돈을 모아본 사람은 알리라. 우스운 액수라도 차곡차곡 숫자가 쌓이는 재미를. 딱히 할 것도 아니지만 그 액수로 가능한 많은 것들을 상상하는 일은 행복이다.

그러했는데,,,


10월 어느 날 아랫이빨 한 곳이 부서져 나간 듯한 불편함이 찾아왔다. 검진차 방문한 치과에서 불편했던 아랫니는 아무 문제가 없고 손봐야 할 다른 치아들이 산재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곧 치료가 시작되었고, 손을 대기 시작하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영역들이 속속 발견되었다. 치아치료로 힘든 몸도 몸이거니와 한 번 오갈 때마다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속속 들렸다.

11월 찬바람은 그렇게 내 가슴을 후벼 팠고, 앙상한 11월의 나무처럼 나의 통장도 골격만 유지한 채 비워졌다.


12월, 큰 기대 없이 모았던 돈으로, 마음 편히 치료받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냐며 욕망으로 부풀었던 마음을 토닥여줄 수 있으니 감사할 일이다.



"현금아, 왜 도망가~~~~!!"



"잠시 머물다 가면 좋을 텐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산을 오르는 것과 배움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