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의 힘
12시까지 뭉개다가 카페로 왔다.
햇살이 내리 꽂힌다. 열기가 뻗친 햇살을 강바닥에 깔린 자갈돌들이 잘게 부숴버린다. 잘게 부서진 빛이 만들어내는 반짝임들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급한 서류 작업을 끝내고 나니 자연스레 글쓰기가 된다. 신기한 일이다. 장소의 힘을 새삼 느낀다. 멀리 보이는 외곽도로로 차들이 끊이지 않고 지나간다. 강옆으로 우거질 대로 우거진 달뿌리 풀이 바람에 일렁이며 만들어내는 초록 군무가 좋다. 옆테이블의 손님들이 나고 들며, 만들어내는 두런거리는 삶의 이야기들. 아이스 음료가 담긴 컵에 맺힌 물방울의 불편함. 이 무심한 듯 평화로운 풍경을 어떤 말로 표현해 낼까 싶다. 그냥 넋두리하듯 쏟아놓고 만다. 며칠 전 읽은 책의 한 구절처럼, 천재성을 지닌 작가가 영감을 얻어 단번에 써 내려간 것 같은 시는 실은 다분히 계획된 창작의 기법을 활용하여 수없이 다듬어진 결과라는 문장이, 힘을 준다. 사실 그 노력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쉬이 시작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대는 핑계였을지도. 알 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한 인생. 될 것 같으면서도 미달인 성과. 이 미묘한 선을 넘지 못해 안달이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도서관에 들러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을 한 권 빌려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