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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100-7

사랑과 계산

by slow snail

아오~!! 진짜!!!!


달달하게 타서 마신 인스턴트 믹스 커피의 흔적이 조심스레 남겨진 부엌 한켠에서 쏟아지는 탄식!


그는 왜 이 흔적을 남겼을까?

비우고 난 커피 봉지는 응당 쓰레기통으로 넣어야 할 것을 그는 왜 인지하지 못할까?

고이 올려둔 봉지는 왜 누군가의 손을 한 번 더 타야 한다는 번거로움을 미리 예견하지 못하는 걸까?

그의 입을 달달하게 만들어준 커피의 흔적이 누군가의 쓰디쓴 탄식을 불러내다는 것을 정녕 모르는 걸까?


나는 그를 사랑하는가?

매번 그의 흔적을 지우는 내가 쏟아내는 탄식에는 계산이 들어가 있다. 나만 그의 흔적을 지운다는 일방적 헌신 비슷한 것.

그러다 문득 그가 알아채지 못하듯이, 나도 알아채지 못하는 나의 어떤 흔적을 그가 지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게 있기나 할까'라는 전적으로 나 중심적인 생각이 지배적이다. 나는 말이야, 지킬 건 확실히 지키는 사람이란 말이야,....


스스로 빠져나가기 힘든 소용돌이 속을 헤맨다.


사랑과 계산 사이에서 허우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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