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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by slow snail

아침 출근길, 5개의 길고 짧은 터널을 지난다.

차선을 빽빽이 메우고 선 많은 자동차들, 사실 이 터널이 없다면 세부목적지야 다르겠지만 한 방향으로 향하는 이 모든 자동차들이 치러야 할 수고는 배가 된다. 모두가 몰리는 출퇴근 시간, 얼마간의 정체가 따분하기는 하지만 사실 너무 고마운 터널이다.


이 편리한 터널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었을까. 도로를 설계하고, 땅을 매입하고, 산을 통과하는 굴을 만들고 도로를 매끈하게 입히는 과정을 생각한다.

도로 건설 기간에 투입된 물적 인적 자원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하지만 개통 이후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곳을 이용하는 통행자들에게 먼 길을 돌아가는 수고와 단축된 시간을 선사한다. 마법 같은 시간이다.


중년이 지는 삶의 무게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던 20대의 삶에 비해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여유가 있는 이유는 장애물을 둘러가야 했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터널이 있는 곧고 넓은 도로를 만들기 위해 들였던 노력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매번 많은 시간이 들고, 굽은 도로를 살펴가며 달려야 하는 길의 불편함을 감지하고,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가기 위해 초기 집중 투자를 통해 완성된 넓고 곧게 뻗은 도로를 인생에서도 내게 된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치들은 수많은 길을 가진 잘 정비된 도시와 무척이나 닮은 모습이다.

비포장길과 지방도로, 빠른 교통순환을 위해 계속 신설되는 도시 순환도로와 장거리를 편하게 이동하기 위해 건설되는 수많은 고속도로를 가진 지도와 같다.


비포장길이나 지방도로밖에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 20대였다면, 중년은 둘러가는 길 혹은 빠른 순환로를 선택하여 탈 수 게 된 것이다.

젊은은 이래야 한다.

지금 이용하는 길 외, 다른 길을 수없이 고민하고 몸으로 뛰어 찾아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같은 목적지를 갈지라도, 오직 하나 있는 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여러 형태의 도로를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는 입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치열하기도 했고, 그러지 못하기도 했던 나의 시간들이 보인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치열하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한 것이 나임을 알기 때문이다.


가을단풍이 깊어지는 어느 날은 조금 서둘러 돌아가는 길을 달리거나, 이른 아침 돌봐야 하는 가족들 챙김에 시간이 쫓기는 날은 서너 개의 터널을 품고 있는 곧게 뻗은 도시 순환로를 이용하거나.


나는 중년의 지도를 잘 그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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