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시를 읽어요

의자 같은 사람

by slow snail

의자

이 정 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여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누군가를 위에 앉히고 그를 받쳐 주어야 하는 의자의 숙명은 드러나지 않음으로 드러남을 만들어 낸다.

사람의 본성은 이와 달리 드러나지 않음을 맹렬히 싫어한다.

그런 면에서 실리콘밸리의 거장들이 하나같이 참여했다는 누군가의 의자가 되어 주었던 한 사람의 장례식 이야기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의자 같은 사람으로 사는 삶은 '기쁨'일까 '슬픔'일까. 애초에 의자 같은 사람으로만 산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일까. 누군가를 의자로 삼아 의자로 기능할 수 있는 삶이 역사 순환의 원리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다.


요즘은 하나같이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한다.

감정의 종류, 나의 자아 정체감 등등, 명확하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부여받기가 쉽지 않다.

'참외밭의 지푸라기', '호박의 똬리'. 참외도 아니요 호박도 아닌 지푸라기와 지푸라기로 만든 똬리는 무르지 않게 골고루 잘 영글게 참외와 호박이 있기까지 기여를 하지만 농부가 아니라면 그 의자 같은 삶을 누가 알아채겠는가.


가족 중 누구보다 먼저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 나는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는 연속성을 가지기가 힘들다.


늘 집안의 여러 일들로 욕구는 중단되고,

중단된 욕구들은 미완성인 채로 뒹굴다 종국에는 나란 사람의 가치를 물고 늘어진다.


나는 이 한 줄의 시로 위로를 받는다.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곳에다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곳에 내놓은 의자가 되기도 하고

가다가다 지쳐서 딱 고만 죽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 가족이라는 의자에 앉기도 하는 것이지.

암,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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