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쌓기를 넘어, 나를 점검하게 만든 독서의 시간
독서는 세상을 아는 가장 조용한 방법이다.
책을 펼치면 누군가의 사유가 시간과 공간을 건너 내 앞에 도착해 있다.
직접 겪지 않아도 되는 실패와 시행착오,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정리한 질문과 답이 몇 시간 안에 나에게 흘러 들어왔다.
언제부턴가 나는 독서를 지식을 쌓는 행위로만 보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나를 점검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같은 문장을 읽어도 그날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문장이 눈에 들어왔고,
밑줄을 긋는 부분은 늘 내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책은 나를 바꾸기보다, 이미 내 안에 있던 생각을 정확한 언어로 꺼내주는 도구로 기능할 때가 더 많았다.
독서의 좋은 점은 속도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빨리 읽어도 되고, 한 페이지에서 멈춰도 된다.
이해되지 않으면 덮어도 되고, 다시 돌아와도 된다.
생산성과 효율을 요구하는 일상과 달리, 독서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오래 남는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고르는 기준도 바뀌었다.
'유명한 책'보다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책'을 찾게 됐다.
사실 그런 책들도 '유명한 책'의 범주 안에 있었기 때문에 모순적인 말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래서 내 독서 목록은 내 관심사의 변화 기록처럼 남아 있다.
불안할 때는 구조와 시스템을 설명하는 책을 찾고, 지칠 때는 인간을 이해하려는 책을 찾았다.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해서 더 현명해지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생각을 덜 단정적으로 만들고,
세상을 조금 더 복합적으로 보게 해주는 힘은 분명히 있다.
흑백으로 보이던 문제에 회색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는 것,
그게 독서의 가장 현실적인 효용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더 많이 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덜 오해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