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건, 내가 똑똑하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는 일이다.
독서를 하면 사람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던 시기가 있었다.
책을 많이 읽으면 말이 유려해지고, 생각이 깊어지고, 삶의 선택도 현명해질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독서를 자기계발로 여겼다.
읽은 권수를 세고, 인상 깊은 문장을 정리하며, '이번 달 독서량'을 성과처럼 관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독서는 나를 똑똑하게 만들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기대했던 방식으로는 아니었다.
책을 많이 읽어도 여전히 결정 앞에서 망설였고, 같은 실수를 반복했고, 감정 앞에서는 무력했다.
독서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다.
대신 문제를 더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그 차이는 처음엔 꽤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책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을 남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명한 철학자의 책은 삶을 직접적으로 바꾸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니체, 쇼펜하우어 등 위대한 철학자로 불리는 사람들의 책을 읽어도
나는 그들처럼 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너무 똑똑했고, 나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나에게 "왜 이렇게 사는지", "왜 그 일을 하는지"를 묻게 했다.
책 속에서 감명깊은 문장은 흔히 마주쳤다.
하지만 그런 문장은 당장 삶에 직접적인 쓸모는 없었다.
대신 어느날 문득 머릿속에 떠올라 깨달음을 주고, 나를 멈춰 세웠다.
독서는 즉각적인 효용을 주지 않는다.
이게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당장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언젠가 나를 통과해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있다.
책을 꾸준히 읽으면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하는 날이 온다.
나는 이제 책을 전투적인 태도로 많이 읽으려 하지는 않는다.
대신 천천히 읽으려 한다.
이젠 읽고 바로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고, 끝까지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독서의 목적을 '생산성'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시간은 결국 혼자 있는 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타인의 생각을 통과하는 경험이다.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는 소설 제목처럼,
독서란 고독 속에서 책과 대화하는 것이다.
독서가 삶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독서는 남의 생각을 들여다봄으로써 나의 편향된 생각을 옅어지게 만들어준다.
이는 조급한 의사결정을 늦춰줄 때가 많다.
나는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 제 3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려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매일 책을 읽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 덜 확신에 찬 사람이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