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왜 읽으려는 지 알아야 한다.
책을 펼치기 전에 꼭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이 책을 왜 읽으려는 걸까?"
운동하기 전에 목적을 세우는 것과 비슷하다.
등 근육을 키우기 위해 턱걸이를 하거나,
체력을 기르기 위해 달리기를 하거나,
혹은 사람들과 같이 뛰기 위해 달리기를 하듯이
책을 읽을 때도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독서를 좋은 습관으로 생각한다.
교양을 쌓을 수 있고, 삶에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읽고 나면 자신이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다 보면 끝까지 읽지 못하거나, 읽고 나서도 남는 게 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독서 실력이나 집중력보다도, 독서의 목적이 흐릿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독서 목적을 세운다는 건 거창한 계획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시험공부처럼 목표를 쪼개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책이 내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는지를 분명히 하는 일이다.
어떤 책은 정보를 얻기 위해 읽는다.
경제 기사를 볼 때 깊이 있는 맥락을 알고 싶어서, 혹은 투자나 커리어에 직접적인 힌트를 얻기 위해서 읽는 경우가 있다.
이런 목적의 독서는 문장을 곱씹을 필요가 ㅇ벗다. 중요한 개념을 챙기고, 나에게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히 버려도 된다.
내가 쓸 수 있는 지식이 중요하다.
어떤 책은 위로를 받기 위해 읽는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며 등장인물의 감정에 머무는 시간, 작가의 문장에 잠시 기대는 시간이 목적이다.
이때 독서는 속도가 느려도 괜찮다. 오히려 느려야 좋을 때가 많다.
읽으며 몰입하고,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면 충분하다.
또 어떤 책은 생각을 넓히기 위해 읽는다.
정답을 찾기보다는 관점을 늘리고,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생각을 흔들기 위해서다.
이런 인문학 독서는 불편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나와 다른 관점의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불편한 감정이 들 수 있다.
또 문학을 읽으며 간접경험을 함으로써 사유가 넓어질 수 있다.
때로는 누군가의 심오한 고찰을 읽는 것보다도 문학을 읽을 때 더 넓게 사유가 확장되기도 한다.
문제는 서로 다른 목적을 구분하지 않은 채, 모든 책을 같은 방식으로 읽으려 할 때 생긴다.
문학을 '많은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추천해서' 읽을 때, 그저 내용을 탐구하듯이 읽으며 지치기도 하고,
실용서를 읽으며 '나에게 필요한 범위 밖의' 정보까지 흡수하려 하다가 진도가 나가지 않을 수도 있다.
실용서는 내게 필요한 부분만 읽는 '발췌독'을 하더라도 독서 목적을 달성했다면 완독 없이도 성공한 독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학도 '유명한 작품이라서 내용을 알기 위해' 읽을 때보다, 내가 정말 그 작품 속에 빠져들 때 효용 가치가 높은 법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보다, 자기 목적에 맞게 읽는 사람이 독서를 오래 지속한다.
그럴 때 책은 편안한 공간이 된다. 그리고 수많은 세월 동안 쌓인 지혜가 흘러들어오게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책을 펼치기 전에 꼭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이 책을 왜 읽으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