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서울 사는 동창 친구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엄마가 서울에 왔다. 집에 갈려고 택시에 올라탔는데, 엄마는 대뜸 친구 A에게 책 추천을 받았다는게 아닌가! 나는 사실, 전혀 놀랍지 않았다. 엄마는 쉬지 않고 수다를 떠는 사람인데,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하는 나보다 친화력 좋은 친구 A를 더 좋아한다. 어느샌가 친구 A는 엄마와 자주 연락을 나눈다. 친구 엄마한테도 넉살 좋게 자신의 취향 영업을 하는 게 웃기면서도 너무 친구 A답다 싶었다. 도대체 무슨 책을 영업했는지 궁금해 엄마의 폭풍 수다에 귀를 기울였는데...
“아따 덥다 더버. 기사님~ 에어컨 좀 시게 틀어 주이소. 어어 그래, 내가 요새 시간이 많아가 독서한다 아이가. A가 전화가 왔더라꼬 니 친구, 책 많이 읽잖아~니랑 다르게! 그래가 잘됐다 싶어가. 책 추천 해달라꼬 카면서 사랑 얘기는 딱 싫다! 복잡은 것도 싫다! 이캤지. 가는 참 아가 우째 그래 싹싹하겠노! ‘어무이 마침 딱 맞는 게 있슴다. 안 그래도 어무이같이 아름답고 진취적이고 멋진 여성이 나와요.’ 이카면서 추천을 해주는데 이름이 뭐더라. 쿠루..쿠..쿠르.. 있어봐봐라 여 있네! 그래 쿠르트 투홀스키의 <그립스홀름성>! 어찌나 맛깔나게 얘기하는지 고마 홀라당 넘어가가 바로 샀지. 시작부터 웃기대. 요새 누가 사랑 이야기를 읽노! 카면서 호통치고 여름 이야기를 쓰겠다고카면서 지 여행가는 얘기를 해! 술술 읽히더라고. A가 내랑 똑 닮았다는 여자가 나온다캐서 유심히 봤지. 주인공 여자친구 뤼디아! 둘이 웃기대! 공주~대디~이캄서 눈꼴시라~ 아 근데 뤼디아는 진짜 똑부러지고 호쾌한고 유머러스한게 내가 봐도 내 같더라~ 줄거리는 둘이 그립스홀름 성으로 여행을 갔다가 수상쩍은 아동보육원을 발견하고 그 뭐시기를 해결 할라꼬 하는 건데, 그것보다는 등장인물들 대화가 더 흥미롭더라고. 근데 희한한게 커플이 여행을 갔는데 친구들이 며칠씩 같이 놀자고 찾아오대. 내 같았으면 미쳤나카고 연락 무시했을낀데. 그 주인공 친구 머슴아 칼헨? 가는 좀 별로고 뤼디아 친구 빌리! 가는 괜찮대! 이 소설은 기냥 인물들이 매력적인 소설 같더라. 그 보육원 운영하는 못된 여자 나오거든. 작가가 엄마를 싫어해가. 엄마 참고해서 만든 인물이라고 니 친구 A가 카대. 가는 뭐 모르는 게 없겠노. 그나저나 엄마가 와 싫었을꼬. 나도 엄마라카나 내 아들도 아닌데 괜히 내가 속상하더라. 니 뭐.. 요새 만나는 사람있나? 결혼하라 카는 게 아이고. 뭐 니도 내땀시 연애한다고 당당하게 말 몬하고 그런거 있는 거 아니제? 엄마는 그 다 괜찮다. 나는 A 좋다. 나는 니들이 당당했음 좋겠다. 아이라고? 진짜가? 니 주구장창 A랑만 붙어댕기자나 아니.. A가 이번 주 토요일에 뭐 키..어? 퀴? 키위? 훼스티발? 간다캐가 그게 뭔지 물어 보다가...아~ 니들 사귀는 거 아니가? 아 그래? 우쨌든 엄마는 다 개안타 니가 키어? 그거라도 알겠제?...”
어쩐지 결혼 잔소리를 안하냐 싶었는데, 나와 친구 A 사귄다고 망상을 할줄이야... 그나저나 이번 주 퀴퍼하는구나!
<그립스홀름 성/ 쿠르트 투홀스키(이미선 옮김)/ 부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