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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경 Aug 25. 2022

절대로 지하철에서 읽으면 안되는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18

  - 절대 지하철에서 읽으면 안 되는 독일문학!    



 

      주말에 연남동을 산책하다 경의선 숲길 끄트머리에 있는 책방을 방문했다. 차분히 책을 구경하던 중 한 손으로 책을 읽을 때 유용한 나무로 만든 독서링을 발견했다. 복숭아 얻어먹은 것도 고맙고 해서 친구 A에 선물해주고자 독서링을 구매했다. 퇴근길에 잠시 친구 A의 집에 들러 선물을 건네주고 떠나려고 했는데, 합정동에 위치한 독일식 빵집에서 만든 시즌 빵을 먹고 가라는 유혹에 그만 문지방을 넘고야 말았다. 친구 A는 선물을 뜯어보곤 기뻐하는데...     



     “너무 예쁘다! 안 그래도 지하철에서 서서 책 볼 때 불편했는데! 잘 쓸게~ 아 맞다 나 얼마 전에 황당한 일 있었잖아! 너 혹여라도 이 책! 절~대로 지하철에서 읽으면 안 된다! 무슨 책이냐면, 잠깐만 북커버 벗겨서 보여줄게. 자! 슈테판 츠바이크의 「체스 이야기」야. 와... 나 이거 읽다가 정신 팔려서 수원 가야 하는데 부평 갔잖아. 수원 도착하니깐 2시간 넘게 걸렸더라. 그럴 거면 부산을 갔지... 아니 내가 멍청한 게 아니라! 일단 책을 읽으면 시간도 공간도 모든 게 멈춘 듯해서 잘못 가고 있다는 판단도 할 수가 없었어. 고로, 이 책은 절대로 지하철에서 읽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지. 무조건 목적지를 놓쳐.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랬대! 줄거리는 간단해. 뉴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배 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당대 최고의 체스 챔피언이 그 배에 올라타 있어. 어찌어찌하다 선상에서 체스 대국이 벌어졌고, 힘들이지 않고 챔피언이 연거푸 이기던 중에 유일하게 대적할만한 상대가 나타나지. 그런데 그는 단 한 번도 체스를 실제로 둬 본 적이 없대. 재대결을 앞두고 그는 어떻게 체스를 잘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주인공에게 이야기해줘. 이게 진짜 하아... 내가 너의 읽는 즐거움을 위해 더 말을 하지 않겠어. 심리묘사가 대단해서 내가 곧 그 사람이 된 듯 손에 땀이 나고 숨이 막혀. 처음에 체스 이야기라니까 대결 중의 심리묘사가 나오려나 했는데, 예상을 비껴가. 장담하건대 훨씬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져. 처음에 천재 체스 챔피온 이야기는 오히려 지루한데,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서 급물살을 타더니 그대로 쉼 없이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어버릴 수밖에 없게 만들지. 그러니깐 절대로 지하철 안에서 읽으면 안 된다! 나는 경고했다.”    


 

      빵 먹는다고 친구의 이야기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질감에 적당히 달달하고 새콤한 자두의 맛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너무 대충 듣고 있던 거를 눈치챘는지 친구 A가 타박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집중력이 이렇게나 떨어졌나. 집중력 키우려면 바둑을 배워야 하나. 아 체스라고 했나? 빵 진짜 맛있다.     

     


                                                            <체스이야기/ 슈테판 츠바이크(김연수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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