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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경 Sep 22. 2022

돈이면 단줄 아는 사람 혼내주고 싶을 때 추천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19

  - 돈이면 단 줄 아는 사람 혼내주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독일문학!     



      사촌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뒤풀이를 위해 사촌네 집에 친척들이 모였다. 하던 업무가 밀려서 노트북을 챙겨 갔다. 주방 식탁에 앉아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술을 권하게 드신 삼촌이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다가와 한잔하자며 나를 끌어당기다 노트북에 맥주를 쏟았다. 노트북은 찌직 팟! 이란 소리와 함께 꺼졌고,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쳤다. 삼촌은 그깟 거 얼마냐며 역정을 내셨고 잔치 분위기는 끝이 났다. 사과부터 하셔라 소리쳤지만, 친척들은 모두 노트북 값을 준다는 삼촌 편을 들었다. 화가 나 그 길로 집으로 향하다 친구 A를 소환해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친구 A는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는데......    


  

     “작업물은? 구출했니? 드라이브 자동저장해놔서 괜찮다고? 다행이다! 다ㅎ... 아니, 진정해! 저장물부터 일단 살리고 봐야지! 그래그래 살다 보면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니깐. 내가 얼마 전에 읽은 소설에도 그런 인물이 등장하는데! 들어봐봐! <9시에서 9시 사이>라는 소설인데, 주인공 덴바가 되게 수상해. 빵집에서 빨리 주문받으라고 닦달하더니 계산할 때는 갑자기 뜸을 들여. 외투를 벗지 않으려고 아득바득하고. 근데 최악은! 내가 매번 강조하는 절대로 만나면 안 되는 남자친구 유형인 거야! 여자친구랑 헤어졌는데, 인정 못하고. 다른 남자랑 여행을 간다니깐 직장까지 찾아가서! 자기가 더 호화스러운 여행을 보내줄 수 있다며 질척여. 그때 여자는 무서워서 일단 알겠다고 그 순간을 모면하거든. 덴바는 역시 돈이라며 돈을 구하러 떠나. 그게 저녁 9시까지라는 조건이 있어서 제목이 9시에서 9시 사이인 게지. 참나, 헤어진 걸 인정 못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돈으로 마음을 돌리려는 게 너무 한심한데, 돈을 구하려고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이 전혀 순탄하지 않아. 그걸 풀어내는 서사는 숨 막히고 조마조마해서 일단 플로우에 올라타면 멈출 수 없이 읽게 돼. 아침부터 이상한 행동을 했던 이유를 알게 되면 ‘아이고 인간아!’ 하면서 짠하면서도 찌질한 주인공을 발견하지. 돈, 돈 하는 사람들 반성해야 해. 그나저나 왜 이제 이 작가를 알게 됐는지 몰라! 너무 재미있어! 비호감인 주인공인데도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된다니깐. 덴바가 만나는 사람들과 상황이 웃겨서 낄낄대다가 마지막을 읽고 나면 갑자기 심각해져서 다시 읽게 돼. 진짜야! 이 책은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는 책일걸. 나는 여기서 그 교수랑 고문관이란 사람들이 나눈 대화가 가장 웃겼는데 말이야. 무슨 대화를 했냐면...”     



    친구 A의 느닷없는 영업에 얼이 빠진 사이에 삼촌이 오타투성인 사과 문자를 보내며 계좌번호를 부르라 하셨고, 삼촌이 고장 낸 노트북보다 2배가량의 돈을 보내주신 걸 확인하고 나는 삼촌을 기꺼이 용서해드리기로 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어쩌면 적당히는 도움이 될지도...?



                                                          <9시에서 9시 사이/ 레오 페루츠(신동화 옮김)/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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