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친구 A의 생일선물을 고민하다 벌써 몇 달이 흐르고 말았다. 곧 내 생일이 다가오니, 그 전에 선물 증정을 마쳐야 한다. 책을 사주면 어떠냐는 주변의 조언이 있지만, 그건 무척 어려운 과제다. 워낙 취향이 확고해 여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품권이 가장 무난하겠지만, 친구 A의 성격상 상처받을 일이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책의 취향을 파헤쳐 보기로 하고 떠보는데...
“독일문학 다 포함해서? 요즘에... 아! 여학교 배경인 소설 좋아하더라고! 왠지 모르겠어. 특히 1900년대 초중반에 여학교 배경인 소설이 너무 좋아. 서보 머그더라고 헝가리 작가가 있는데 <아비가일>이란 소설이 있어.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인데, 주인공 기너가 아버지와 떨어져서 기숙학교에 들어가게 된 거야. 어떤 취향도 허락하지 않는 규율적인 학교에 반감을 품고 탈출을 결심해. 아비가일? 나도 처음엔 주인공 이름인 줄 알았는데, 그 학교에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어. 조각상 아비가일에 소원을 빌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거야. 아비가일의 정체는 무엇일지! 기너는 과연 학교를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지! 여학교 배경으로 탈출이란 모험적 요소가 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어!
그리고 <물망초>! 이건 1930년대 일본이 군국주의로 접어드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여학교 소설이야.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 강경파와 학과 공부보다는 문화 예술에 심취한 온건파 그리고 개인주의로 나눠. 강경파의 대표는 반장 가즈에, 온건파의 여왕 요코 그리고 개인주의 마키코의 은근한 삼각관계를 다룬 이야기야. 서정적인 여학교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지. <물망초>의 미묘한 러브라인이 조금 아쉽다면 <제복의 소녀>를 추천하지. 가톨릭의 엄격한 여자학교기숙사에서 선생님과 제자 간의 러브라인이 등장하지. 이 소설은 한번 예전에 너한테 말한 적이 있는데 기억하니? 조금 더 귀엽고 밝은 스토리로 보고 싶으면 영화로 봐도 좋을 거야. 유튜브에 1930년대 영화판이 올라와 있거든.
마지막으로 여학교의 초리얼리즘을 보고 싶다면 단연, 와야마 야마의 <여학교의 별>이지. 학교일지에 그림 끝말잇기를 한다거나, 선생님들한테 별명 붙여주기, 기발한 놀이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게 진짜 여학교 모습 아니겠니. 학교가 규칙에다 정형화되고 틀에 갇혀있는 느낌이 있는데, 거기 속한 이들이 나름의 유희를 만들고, 규칙을 교묘하게 깨고, 이를 또 선생님이 잡아내고 또 빠져나가고... 이런 과정이 좋은 거 같아. 거기다 여학생만이 가지고 있는 비밀스러운 관계가 또 나를 자극하고 말이야. 혹시 너 책 선물하려고 이런 질문한 거면 그만해 줬으면 좋겠어. 나는 독서보다 책 사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 나의 행복을 뺏어가지 말아 줄래? 대신 상품권이면 좋을 거 같아...”
촉이 왤케 좋은 거야... 아 어차피 다른 여학교 배경 소설도 모르니 그래 상품권으로 해야겠다.
<아비가일/ 서보 머그더(진경애 옮김)/ 프시케의 숲, 물망초/ 요시야 노무코(정수윤 옮김)/ 을유문화사, 여학교의 별/ 와야마 야마(현승희),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