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아니, 들어봐봐! 나는 갓생이란 말이 가장 싫어요! 도대체 인간이 왜 신의 삶을 살아야 하느냐 이 말이야. 사회가, 문화가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데, 모두가 다 맞춰 살 순 없잖아. 왜 개인 탓으로 돌리냐고! 시스템이 문제인 건데! 가끔은 이런 태도로 남 탓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얼마 전에 읽은 소설이 이걸 잘 보여주더라고. 잉고 슐체의 <심플 스토리>라는 소설인데, 독일통일 이후 동독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야.
소설 구성이 특이한데, 29개의 짧은 이야기가 나열되어 있어. 등장인물이 겹치기도 하지만, 전혀 연관성이 없기도 해. 이야기마다 화자도 달라서 ‘이 사람이 주인공이다’라던가, ‘이게 주요 사건이다’라는 게 딱히 없어. 뭐 따지자면 등장인물 속 사람들에게 사건은 동독이 흡수 통일되었다는 사실이겠지. 소설은 알텐부르크라는 독일의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등장해 이들은 독일통일 이후에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 구동독 시절의 활동이 통일 후에는 인정받지 못해서 실업자가 되어 구직난을 겪기도 하고, 자본 중심 사회에 적응한다고 편법과 악행을 저지르기도 하지. 구동독 시절의 삶을 어떻게 장벽 하나 무너졌다고 바로 서독 체제에 익숙해지겠어. 익숙했던 생활 습관이 드러나는, 가령 동독에서만 있었던 용어나 물건 등과 같은 상징적인 단어들이 대거 등장해서 일상에 묻어나오는 게 이 소설의 포인트인데, 덜 드러나서 아쉬웠어. 우린 사회주의 체제도 잘 모르고, 특히 독일 문화권도 잘 모르니깐 각주가 조금만 더 상세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더라고.
여튼, 역사는 언제나 큰 뼈대만 보여주고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한계가 있잖아. 이 소설은 작은 이야기들을 콜라주의 형식으로 풀어냄으로써 진짜 역사를 보여주는 방식은 흥미롭단 말이지. 그나저나 사람들이 화병에 걸리는 이유가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거든. 여기 등장인물들에도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 충분히 새로운 체제에 맞추느라 애쓰고 있다고 위로해주고 싶어. 자본주의 너무 힘들죠? 끊임없는 자기계발 지치시죠? 그 마음 다 압니다! 갑자기 바뀐 사회로 탓을 돌려요...”
갑자기 전화가 와서는 올해 연간 피트니스 회원권 끊어놓고 실제로 운동한 게 얼마 안 돼서 시무룩해져선 툴툴대는 친구 A. 별안간 책 영업을 빌미로 왜 나한테 변명을 늘어놓는 거야. 야! 나도 너랑 같이 회원권 끊어놓고 같이 운동 얼마 못 갔어. 원래 그러려고 끊는 게 연간 회원권 아니냐. 내년엔 진짜 열심히 다녀보자는 말로 겨우 달래서 친구 A의 영업을 종료시킬 수 있었다.
<심플 스토리/ 잉고 슐체(노선정 옮김)/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