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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경 Mar 14. 2024

악몽이 필요할 때 추천하는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49

   - 악몽이 필요할 때 추천하는 독일문학

     

    며칠째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고 있다. 차라리 돼지나 불이 나오면 복권이라도 사지. 그저 깔깔깔 거리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연예인과 알콩달콩 데이트한다던가. 소소하게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다. 이게 뭐가 문제냐면 꿈이 즐겁다 보니 현실이 오히려 악몽 같다는 거. 악몽을 꾸면 깨길 잘했다는 생각이라도 들 거 같다는 푸념을 늘어놓자, 친구 A가 무서운 눈빛으로 돌변하는데...

     

   기분 좋은 꿈이 그런 게 있어, 현실인 줄 알고 신이나 하다가 깨고 보니 꿈이야. 얼마나 허망하다고. 간혹 악몽 꾸길 바라는 사람도 있더라고. 너 이 책을 읽다 잠들면 장담컨대 백퍼 악몽 꾸게 되어 있어! 내가 어제 그랬거든. 크리스티안 크라흐트의 <망자들>이란 소설이야.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인데, 스위스의 어느 영화감독이 독일과 일본의 영화 합작 사업을 위한 영화제작을 의뢰받고 일본으로 가는 이야기야. 이 소설은 서사보다는 구조적인 부분이 더 집중하고 있어. 소설 구성이 일본의 노래와 춤으로 구성된 가무극인 의 구성방식 --를 따와서 진행하거든. ‘파트의 특징은 이야기가 진행되기보다는 맴도는 거 특징이래. 그래서인지 주요인물 2명이 과거를 회상하거나 상념에 빠져있어. 나카 간스케 <은수저>는 읽고 있으면 잊고 있던 다정했던 과거를 떠오르게 했는데, <망자들>파트는 잊고 싶었던 과거를 끄집어내더라고. 되게 멜랑콜리하고 우울해. 독서를 그만하려고 몇 번을 시도했는데 이상하게 멈출 수가 없었어.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에 대한 묘사가 아름답고 매력적이더라고. 오히려 더 그로테스크한 문장이 읽고 싶어지더라니깐. 소설을 읽으면서 도대체 왜 제목이 망자일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소설의 배경인 1930년대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흑백의 무성영화가 유성영화로 변하는 과도기더라고. 현실을 더 잘 재현하려고 애쓰던 때였던 거 같아. 그런데, 과연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예술일까? 사건을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현상 뒤에 있는 것,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하는게 예술이라고 소설은 말하고 싶은 듯 보였어. 그러기 위해선 사람이 아닌 망자의 시선이 필요하고. ‘망자는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해서 현실 이면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테니깐 말이야. 간만에 독특한 구조의 낯선 분위기의 소설을 읽었더니 저절로 꿈자리가 사납더라. 어휴...”

    

   친구 A의 추천에 처음으로 책을 빌려와 p.15까지 읽고 불편한 마음이 들어 급히 책을 덮었다. 그대로 잠이 들었는데, 과연 친구 A의 추천대로 그날 꿈자리가 뒤숭숭했고, 덕분에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망자들/ 크리스티안 크라흐트(김태환 옮김)/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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