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50 – 지금 독일문학 읽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 웃을 여력도 없을 때 권장하는 도서
나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닌데, 3월엔 괜히 일을 벌이는지. 일을 마치고 평일 저녁마다 각종 취미로 꽉꽉 채우다 보니 이것은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저녁에 사로잡힌 삶이 되어 버렸다. 한 달을 지나니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고 즐겁게 시작했던 일들이 짐이 되어 집에 널브러져있었다. 영혼이 나간 채로 친구 A의 전화를 받았는데...
“아 가끔 쓸데없이 의욕이 넘쳐서 감당되지 않을 때가 있지. 그럴 때는 책을 읽을 여력도 없어져. 이렇게 기운이 없을 때는 독일문학은 잠시 치워두게 되더라고. 끝없이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는 그들의 내면세계가 벅찰 때도 있단 말이지. 웃고 즐길 여력도 없을 때 언젠가 사뒀던 만화책을 서가에서 꺼내 들었는데, 딱 이다 싶었어.
시크한 시바 ‘폰타’와 허당끼 다분한 산책담당자 리에코의 산책 이야기 <폰타와 오늘의 산책>이었는데. 표지 그림체가 서정적인 분위기라 대놓고 ‘힐링힐링’일 거 같아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첫장에서부터 사뭇 다른 분위기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자세를 고쳐앉고 읽게 되더라고. 리에코가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서 산책담당자가 변할 거라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이 돼. 리에코는 머리가 썩 좋은 편은 아닌 거 같아. 자주 다녔던 산책길을 몰라보고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고 놀라 하고, 대학을 가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를 거대한 딸기를 만들고 싶다라는 엉뚱한 말을 늘어놓기도 하고 말이야. 그럴 때마다 다소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폰타는 생각하는데, 이게 진짜 웃겨. 이렇게 시크한 개도 있군하면서 말야.
둘의 산책 에피소드를 그리는데, 에피소드의 순서는 선형적이지는 않아. 견생의 나이에 따라 둘의 대화 주제가 달라지는 것도 흥미롭더라고. 리에코는 어렸을 때도 엉뚱해서 그게 되게 귀여워. 허당끼가 다분하지만 스스로는 꽤나 진지한 리에코와 누가누굴 산책시키는지 가끔 헷갈리는 폰타의 생각과 시선. 이 둘의 캐미가 진짜 장난없다니깐.
이게 1,2권이 있는데, 나는 1권만 읽고 2권을 아껴보고 있어. 이 환상적인 둘의 산책이 끝이 나지 않길 바라면서 말이지. 아 가끔은 엄청나게 박장대소를 하지 않아도 되고, 소소하게 웃음이 피식 흘러나오게 하는 이야기가 좋단 말이지. 내가 만화책 빌려줄 테니깐 읽어보렴. 역시 휴식엔 만화지 만화.”
친구 A가 던져 준 만화를 살펴보다가 학창시절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만화대여점이 떠올라 집 근처 만화카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리뷰를 살피다 만화보다는 후기사진으로 올라온 김치볶음밥이 너무 맛나 보여 이번 주말엔 여기에 들러봐야겠다는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이런, 할 일이 더 늘어나 버렸군.
<폰타와 오늘의 산책/ 타오카 리키(김진희),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