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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 연말 마무리가 싫은 이들에게 권하는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by 박효경

호들갑 독일문학 66

- 훈훈한 연말 마무리가 싫은 이들에게 권하는 독일문학



연말이 되었음을 달력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건 길거리마다 반짝이는 가로수 위 꼬마전구와 갖가지 화려한 트리 장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카페마다 상점마다 심지어 회사 로비에도 트리가 있다. 모든 이들이 연말 분위기를 내고 싶어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귀찮은 이들도 존재한다는 것. 그런 면에서 친구 A랑 생각을 같이하는데...



“아 그러니깐 말이야. 나무들은 괜찮나 몰라? 저렇게 번쩍거리는 게 과연 괜찮을까? 이게 또 나 하나 안 하겠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뭔가 다들 들떠 있는 거 괜히 별로인 거 같아. 결국 시간이라는 거 인간이 억지로 구분한 것에 불과한데, 뭐 연말이 대단하다고 말이야. 반짝거리는 연말 분위기에 좀 심드렁해졌을 때 내가 진짜 굉장한 소설을 발견했단 말이야. <크리스마스 잉어>라는 제목의 단편집이야. 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어. 저마다 예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라 흥미로운데, <굶주림>이란 소설이 최근 읽은 소설 중에 단연인 거 같아. 자신을 피아니스트로 소개하는 한 30대 후반의 여성이 월세를 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거든. 여자는 스컹크를 반려동물로 키우고 있어. 벌써 특이하지? 아버지가 총독이었던 그녀는 정치적인 이유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어. 스컹크는 전쟁 중에 죽은 자신의 약혼자가 선물해 준 거라 소중히 데리고 다녀. 스컹크는 평소엔 얌전한데, 배가 고프면 예민해져서 냄새를 풍겨. 근데 또 입맛이 까탈스러워서 음식을 엄청 가려. 소소한 연금과 피아노 레슨하며 살아가는 여자는 먹을 거와 교통비를 아껴가며 안쓰럽게 살아가. 하루는 예민해진 스컹크에게 손을 물리는데, 염증이 심해져서 병원까지 가야 할 지경에 이르고, 레슨도 하지 못하게 된 거야. 그러던 중 주인집 아들이 홍역에 걸려서 종일 간호해 줄 이가 필요했는데, 여자가 선뜻 나서게 된 거지. 그런데 곧이어 여자가 굉장히 수상하고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해. 여기서부터 정말 흥미로워진단 말이지. 여자가 다르게 보이면서 일차적으로 화가 났다가 곧 연민과 동정심이 들었다가 이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캬 결말까지 완벽하다. <굶주림>말고도 다른 단편의 분위기가 모든 곳이 빛을 반짝이는데, 나만 회색빛인 거 같은 느낌이 들어. 연말에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느낌이 싫다면 이 소설 읽으면서 음침한 연말도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거야...”

아니, 내가 굳이 음침하고 싶은 거까지는 아닌데 말이야. 허허 중간이 없어. 중간이...



<『크리스마스 잉어』 중 「굶주림」/ 비키 바움(박광자 옮김)/ 휴머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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