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집이 가까운 단추는 1인 가구에는 지나치게 많은 양의 종종 채소나 과일을 사서 나눠주곤 한다. 오늘은 오렌지를 싸게 샀다며 나눠주겠노라 방문했다. 단추가 집에 온다고 할 때는 마음의 준비가 다소 필요하다.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새 자리를 잡고, 가방에서 뜨개질을 꺼내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단추는 자리를 잡고 앉는데...
“지난 주말에 A랑 밥을 먹는데 ‘영혼은 쪼개질 수 있을까요?’라면서 갑자기 요상한 질문을 하더라고요.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또 시작이다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글쎄요?’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버터가 듬뿍 풀어진 카레에 오징어튀김 토핑을 찍어 먹었어요. 요즘 A가 읽고 있는 책 얘기였어요. A가 밥 먹다 말고 책을 꺼내서 보여주더라고요. <나?>라는 제목이었어요. 내가 특이하다고 말했더니 A가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가더라고요.
소설 배경이 1차 세계대전이래요. 전쟁터에서 죽었다고 생각한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나인지 타인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육체가 움직이니 몸이 이끄는 대로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요. 가족과 친구들은 단숨에 주인공을 알아보지만, 여전히 주인공은 석연찮은 거죠. 아! 그 집 개만 남자를 보고 짖고 물어뜯었대요.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내와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진 자신이 어쩐지 어색해요. 불쑥 수술이나 치료가 아닌 제빵 지식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하고요. A 설명을 듣다 보니 ‘지킬 앤드 하이드’ 같다고 했더니 대뜸 정색하면서 아니라는 거예요. 지킬 앤드 하이드는 하나의 영혼이 갈라진 거고, 이 소설은 조각난 영혼 2개가 하나로 뭉쳐진 거라 다르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질문을 했나봐요. 영혼이 쪼개질 수 있냐고 말이에요. 전쟁터처럼 여러 죽음이 뒤엉켜있는 곳이라면, 영혼은 조각 조각나서 흐트러져 엉뚱하게 조합되어 빗나간 어느 몸에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어떤 것도 파괴하는 게 전쟁이잖아요.
뭐, 좀 너무 정색하길래, 이해가 안 되는 척을 좀 했어요. 길게 얘기해줬는데, 도중에 남은 카레에 밥 추가해서 먹느라 대충 들었어요. 근데, 난 내가 나인지 아닌지 뭐시기 보다 전쟁터 나간 사이에 아내에게 접근한 ‘나’의 친구, 알고 보니 ‘나’와 애인이었던 이웃 여자의 질투! 이들 관계가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친구 A에 대한 푸념을 풀어내는 동안 쉬지 않던 뜨개질을 구경하다 나는 오늘 저녁은 기필코 버터 향이 풍부한 카레에 오징어튀김 토핑 올려 먹겠노라 결심했다...
<나?/ 페터 플람(이창남 옮김)/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