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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루하는 비법이 궁금할 때 참고할 만한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by 박효경

호들갑 독일문학 68

- 회사에서 일하는 척하며 현명하게 딴짓하는 법이 궁금하다면 참고할 만한 독일문학


‘나, 번아웃일까? 일하려 해도 의욕이 안나. 회사 그만두고, 쉬고 싶다...’

라고 메신저를 보내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친구 A였다.



“요즘 시기에 일 그만두면 큰일 나! 나가라 해도 무조건 붙어있어야 할 판에 정신 차려라! 대신 너의 노잼 시기를 현명하게 타파할 만한 책을 추천해 주지. 이건 현대 직장인이 현명하게 직장 생활하는 데 교재로 써도 되지 않을까싶었던 소설이었어. 로베르트 발저의 <토볼트 이야기>야. 이게 기획부터 되게 흥미로운 책인데 말이야. 발저가 ‘토볼트’라는 캐릭터로 여러 편의 글을 썼는데, 이번에 그걸 모아서 냈다고 하더라고. 게다가 벤냐민이 쓴 발저에 대한 에세이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이건 무조건 소장각이지!


walter-benjamin-library.jpg 발터 벤야민


여러 작품 속에 등장하는 토볼트는 제각각 성격이 다르게 등장해서 정체성이 다양하게 그려지더라고. 여기서 바로 직장인의 덕목이 드러나지. 직장인의 자아와 일상 속 자아는 철저하게 구분하는 거 말이야. 정신 건강을 위해선 때론 여러 정체성이 필요하지. 거래처에 싫은 소리하는 건 진짜 ‘내’가 아니라 직장인 자아가 내뱉는 말인 거지. 그러면 좀 견딜 만해지는 거 같아. 상사한테 꾸지람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또, 어떤 작품에선 어느 귀족의 하인으로 일하는 토볼트가 등장하거든. 여기가 진짜 참고할 만한 이야기가 많아. 하인인 토볼트는 자신이 모시는 백작을 관찰하면서 ‘귀족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짧은 논문을 써. 거침없는 그의 연구 글을 읽다 보면 상사에 대한 비망록을 쓰면서 상사로부터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 그 외에도 직장 동료들과 사사로이 편 가르지 않기. 자주 산책하기. 일하다 망상하며 딴 짓하기. 꼭 필요할 때만 대들고 싸우기 등등 하인인 토볼트의 이야기를 통해서 숨 막히는 직장 생활에 요긴하게 써먹을 방법이 저절로 떠오르더라. 그만둘 생각 말고 일하면서 딴짓하고 게으름도 피우고 회사 욕도 하면서 잘 다스려보자고...”


발저.png 로베르트 발저


‘감사합니다! 책 얘기는 신나게 하시다가 제목을 물어보니깐 얼버무리시더라고요. 월급루팡. 게으름을 지향, 노예근성을 자조적으로 비꼬고, 자아가 여러 개. 기억나는 키워드만 조각조각 드렸는데 A 님에게 티 나지 않게 알아봐 주시다니 진짜 감사합니다. 다음에 제가 밥 한 끼 사드리겠습니다!’



친구 A로부터 알아낸 책 제목을 오리에게 건네고 받은 답장이었다. 친구 A는 책을 빨리 읽는 오리를 견제하느라 책 제목은 잘 안 알려준다고 한다. 그럴 거면 책 얘기를 꺼내지를 말던가. 도대체 무슨 심리인지 도통 모르겠다. 쟤도 자아가 몇 개나 있는 거겠지...



<토볼트 이야기/ 로베르트 발저(최가람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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