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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hmitz cabrel Oct 27. 2024

프롤로그

축축한 행복


흐린 날이 좋다. 


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 빗방울이 떨어진다. 어깨를 톡톡 두드리던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뿌리를 품은 흙이 젖어든다. 볕이 숨은 낮이 밤 같다. 해가 지는지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내 마음도 축축하다. 지하철 창밖으로 물안개에 잠긴 강물과 빌딩들이 지나간다. 역에 내리니 습기가 얼굴에 달라붙는다. 순간 짜증이 나다가 날씨에 맞춰 목욕이나 하자는 생각을 한다. 


혼잡한 계단을 오르다 누군가와 손이 부딪치고는 잠시 멍해진다. 고개를 탈탈 흔든다. 하루 내내 몽롱했다. 바다를 떠다니는 유리병처럼 주변이 흐릿하다. 축축한 마음을 안고 조용히 걷는다. 어둑한 세상을 바라보며 이런 게 행복인가 한다. 


늘 나를 기다리는 방에 들어서면 캄캄한 어둠 사이로 네온사인이 줄지어 빛난다. 창밖의 형광빛이 흘러내리는 빗물 따라 일그러진 모양으로 헤엄친다.  


나는 가망 없는 일을 하는 걸까. 가끔 떠오르는 문장이다. 하고 싶은 게 있다고, 공부도 회사도 그만두고 혼자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고픈 일보다 돈 버는 일에 더 힘을 쓰는 건 이전과 같다. 언젠가 쓰는 일로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눈을 깜박거리게 되는 질문이다. 깜박거리던 눈이 저절로 감긴다. 불 꺼진 집 안에 누우니 편안하다. 날씨도 날 닮은 날, 편하다. 


대체로 시무룩한 생활을 하고 있다. 웃고 찡그리고 놀랄 때도 있지만, 혼자가 되면 누구나 그렇듯 무표정이다. 쉰다. 이 마음은 맑은 하늘보다 흐린 하늘에 가깝고, 구름처럼 물기를 머금어 축축하다. 그리고 어쩌면 푹신하다. 


커튼을 치기 위해 창가로 간다. 파도 소리를 내는 차들을 보며 그들이 집으로 무사히 가 잠들기를 바란다. 뿌연 도시에 가라앉은 우리가 아늑한 잠에 들기를. 


집에 오니 졸음이 반갑다. 이도저도 가지 못하는 구름을 인질로라도 잡고 있어서 내 행복은 축축한 걸까. 고민하다가 나는 잠에 든다. 환상적인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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