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울슬로와 나
어떤 음식을 좋아합니까? 라고 물으면 나는 고민에 빠지지만, 어떤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합니까?라고 물으면 눈도 깜박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코울슬로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나는 말 그대로 코울슬로 만드는 걸 좋아한다. 일을 하다가 책을 읽다가 산보를 하다가, 문득 코울슬로가 떠오르면 집으로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재료를 산다. 재료는 모두가 짐작할수 있듯이 양배추, 양파, 옥수수 통조림, 당근, 마요네즈, 설탕, 식초다. (원하시면 재료를 추가하거나 빼실 수 있습니다.) 나는 이것들을 썰고 버무려서 커다란 반찬통에 꽉 차도록 2통이나 만든다. 물론 재료를 사놓고 귀찮아서 냉장고에 고이 놓아둘 때도 있지만, 양배추가 썩기 전엔 꼭 꺼내서 코울슬로를 만든다.
코울슬로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가장 먼저 양배추를 썬다. 크게 썰 수도 있고 얇게 썰 수도 있다. 당근도 가늘게 썰 수도 있고 굵게 썰 수도 있다. 양파는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되지만 넣으면 마요네즈의 맛을 덜 느끼하게 해준다. 넣는다면 물에 담가 매운기를 빼주어야 한다. 안 그러면 양파를 씹을 때마다 코가 시큰거릴 수 있다. 단것을 싫어한다면 유기농 옥수수 통조림을 넣으면 된다. 단맛에 기쁨을 느낀다면 그냥 일반 통조림을 넣자. 마요네즈는 양배추의 양에 따라 몇 스푼 뜰지 결정한다. 양배추 반 통 정도면 밥숟가락으로 여덟 스푼 정도, 식초는 한 스푼, 설탕은 입맛에 따라 넣는다. 시큼한 맛이 싫다면 식초는 반 스푼으로 줄인다. 코울슬로는 심플하기 그지없는 요리지만 이렇게 저렇게 하면 맛이 오묘하게 이랬다저랬다 한다.
내가 이런 자잘한 이야길 늘어놓는 건 나한테 코울슬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라는 단어를 여기다 써도 되는 것인가?
나는 코울슬로를 아침에 버터 바른 식빵에 올려 먹고, 모닝빵에 끼워 먹고, 치킨을 시켜서 곁들임 반찬으로 먹고, 그냥 입이 궁금할 때 숟가락으로 떠먹곤 한다. 그럴때면 이 세상에 나와 코울슬로만 있어도 좋겠다, 라는 착각이 진실로 든다. 아니, 이게 착각인가? 이것은 진심이다. 그 상황에 한해서는 그렇다. 진실이라는 단어를 이런 문장에 써도 되는가?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니? 너보다 중요한 게 이 일이야.’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아. 그러니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게 중요해.’
‘가장 필요하지만 가장 얻기 어려운 돈 때문에 매일매일 수그리는 게 힘들구나.’
‘진실을 등지는데 능한 사람들. 그들은 진심으로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단어에, 문장에 짓눌린다. 밖에서 마주하는 사건들과 날아오는 문장들에 눌리다 보면 납작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다시 부풀어 오르고 두 발로 일어서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날 가볍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예를 들어 코울슬로 같은 것.
그러니까 나는 단어들의 무게를 덜어내주기 위해 코울슬로를 만드는 것이다. 중요. 필요. 진심. 진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만든 코울슬로를 좋아합니다. 가끔은 이렇게 적어 보자. 무거운 단어들이 잠시간 가벼워진다.
이 단어들이 무게를 덜 수 있는 건 코울슬로 덕분이다. 코울슬로가 가볍고 산뜻한 맛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제 보니 내가 코울슬로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 이 음식이 무겁지 않고 가벼우며, 끈끈하지 않고 성기며, 그리 강하지 않은 맹숭맹숭한 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것 같다.
식탁만 있는 세상에서 코울슬로를 먹다 보면, 귀엽고 못난 색색깔의 존재들이 찾아와 같이 빵에 발라먹고 하지 않을지. 나도 그중에 하나가 되어 본다. 기분이 좋아진다. 납작해지는 과정도 받아들일 수 있고, 그날이 또 오리라는 사실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우리는 코울슬로를 먹고 다 같이 가볍게 둥둥 떠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다. 코울슬로는 그런 음식이다. 그러니 몸이든 언어든 일이든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게 있다면, 가끔 코울슬로를 만들어보면 와작와작 먹어보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