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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hmitz cabrel Oct 27. 2024

반짝거리는 것이 묻어있다




언젠가부터 책을 접지 않는다. 예전에 어떤 이에게 동으로 만들어진 책갈피를 선물 받은 다음부터 모서리를 접는 일을 그만두었다. 북다트라는 이름의 책갈피는 새끼손톱만한데, 클립처럼 원하는 페이지에 끼울 수 있다. (종이를 손상시키지 않으려면 약간의 연습이 필요하다.) 책을 펼치면 그게 가끔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책갈피를 선물한 이와는 말이 쉽게 통했다. 그래서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어도 항상 말을 나누었다. 밤새도록 말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의 말을 듣다 보면, 그의 어딘가가 반짝거렸다. 나는 주로 듣는 쪽이라 이런 생각을 길게 할 수 있었다. 말은 가끔 흩어졌다. 내 귀로 들어왔다가 머릿속을 통과하여 사방으로 퍼졌다. 아마도 그때 반짝거린 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다른 누군가와 말을 할 때도 간혹 이런 것들을 느낀다. 가장 쉬운 경우는 아이들이다. 일터에서 많게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적게는 한 달에 두세 번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아이들은 어려움 없이 내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가벼운 인사부터, 할 일을 끝내고 저 잘했죠?라던가. 종이 치면, 쉬는 시간에 게임하면 안돼요?라던가. 무더운 늦여름날, 너무 슬퍼요. 꽃이 지잖아요!라던가.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반짝이는 것이 묻은 것 같다, 라고 생각한다. 


물론 주변인들에게서, 또 길거리에서 멍하니 있다가 한두 마디 스쳐 지나가는 말에도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원체 듣는 것을 좋아해서 아무 말이나 귀에 주워 담곤 하는 것이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 나는 말에 재주가 없다. 어디에선가 말하는 일을 부탁받으면 대부분 미안하다고 한다. 이런 거절에는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 완전히 망치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폐를 끼치게 될 테니까. 나는 듣는 것이 좋고, 듣다가 듣다가 결국 보게 되는 일이 좋다. 말하며 스스럼없이 자신을 내놓는 일이 참으로 신기해서 웃음이 나올 때는 꾹 참는다. 대화 중 부적절한 지점에 서 웃으면 오해를 받기 십상이고 나는 말주변이 없으니 내 변명은 서로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따금 무언가 반짝거린다 싶으면 가만히 볼 뿐이다. 


책갈피를 선물한 이에게도 반짝거리느니 뭐니 이런 말은 한 적이 없다. 비슷하게 말하려고는 노력했다. 그때만큼은 미래 같은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동으로 만들어 진 책갈피들도 어디로 가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다. 그걸 선물 받기 이전에는 책갈피를 쓴 적이 없어서 나에게 남은 책갈피도 없다. 그래도 책 모서리는 접지 않는다. 그냥 페이지 숫자를 기억하려고 한다. 기억이 안 나면 눈으로 찾으면 되는 일이다. 그러다 찾지 못하면 읽지 않으면 되고, 그러면 말들이 귀로 들어온다. 그럼 나는 또 간혹 이런 생각을 할 뿐이다. 왜인지는 모르는데, 당신들에게 반짝이는 것이 묻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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