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다는 말이 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지겹다.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데 일은 많지 않으나 종일은 한다. 돈은 안 모이고 소속이 없으니 간혹 외롭다. 물론 즐겁기도 하다. 조건부 자유를 누리며 하고 싶은 딴 일도 하고, 좋은 사람들과 작업하게 될 때 그만한 기쁨이 없다.
그런데 혼자 일하는 사람들은 그리드가 없어서 간혹 한계선에 무지하다. 무리하면서 무리하는 줄 모른다. 가끔 동료 의식을 나누는 사람들에게서 건강이 악화되어 쉽니다, 몸이 아파 휴식합니다, 라는 소식을 들을 때면 그들을 위해 성호를 긋는다.
집으로 가는 길에 퐁퐁 국화 하나를 산다. 자주 가는 꽃집에 귀를 늘어뜨린 개가 한 마리 있다. 손님을 잠깐 반긴 다음 푹신한 자기 방석 위로 돌아간다. 그 개가 없는 날이면 아쉽다. 투명한 꽃병에 퐁퐁을 꽂는다. 짱짱하게 피어난 샛노란 꽃이 예쁘다. 뜬금없이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살고 있을까. 내가 생각했던 ‘어떻게’가 이런 것이었나.
돌아보면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내가 꿈꾼 생활과 지금의 오차는 대부분 나의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조언과 제안에 끄덕이지 않고 한없이 빗나간 이유를 모르겠다. 희한한 믿음이었다.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안착하리라는 환상 속에서 나는 꿈과 현재의 오차가 끝없이 커지는 모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이를 먹었다.
예전에 몰랐던 생소한 것이 가슴에 차오르곤 한다. 어르신들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지나왔을까. 대체 어떻게 한 걸까. 학교에서는 왜 점점 어려워진다고 알려주지 않은 걸까. 이렇게 남을 탓한다. 한 사람 있었다. 서투른 선생이었다. 좋은 사람인 걸,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이란 걸 조그만 나는 멍청해서 몰랐다. 이 몸으로 세상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순간은 오지 않는단다. 살면서 원하지 않은 말들에 둘러싸이게 될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감정을 함부로 표현해서는 안 된단다. 약한 사람으로 보여서는 안 돼. 그러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말을 받아들이면 내 존재를 자책할 것만 같았다.
소중한 사람들이 낳은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다 왕 울어버린다. 그럴 때 난 기쁘다. 그리고 미안하다. 어릴 적 속 다 보이며 웃기게 까불던 나를 바라보던 그 사람들의 눈이 보인다.
난 여전히 이해하고 싶지 않다. 버텨가는 마음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아무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계속 상승한다. 공기의 저항을 계산한다. 계산은 언제나 틀리다. 오차는 줄어들지 않는다.
이곳에 멈춰 서고 싶다. 그러나 동료들이 가므로 좇는다. 누군가는 날 따라온다. 함께 뛰어버린다. (혼자선 못하겠다!) 내가 멈추면 누가 날 안고 누가 멈추면 내가 안는다. 그게 수많은 오차가 포함된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전부다. 나는 자신 없게 발을 구른다.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