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chmitz cabrel Oct 27. 2024

나방을 죽이면 안 돼



작은 벌레를 무서워했다. 어릴 때 그랬다는 거다. 이리저리 기어 다니다 사라지는 벌레들이 겁났다. 대체 어디로 갔을까? 날아다니는 벌레는 더 심각했다. 가끔은 벌레가 나만큼 커져서 집으로 커다란 몸을 구겨 들어오는 상상도 했다. 사람들에게 말해보기도 했는데, 나중엔 우스운 이야기 같아서 혼자서만 생각했다. (일부러 그런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우습기도 하다.) 사실 벌레보다 더 무서워하는 건 따로 있었다. 나는 귀신 이야기만 나오면 공포에 질려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곤 했다. 어둠에는 분명히 보이지 않는 귀신이 숨어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다행히 대부분 가족들이 있는 집에서 잠에 들 수 있었고 문득 두려움이 들면 벌떡 일어나 방 불을 켜거나 거실로 뛰쳐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집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자야 할 때였다. 


어릴 적에는 성당가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과 노는 게 목적이었다. 비밀스런 공간으로 가득한 넓은 장소에서 우리만의 비밀을 만들 수 있었다. 수없이 되뇌인 기도와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작은 기쁨이었다. 교리 시간에 땡땡이 친다거나 어른들에게 거짓말하는 법을 공유한다거나…. 비법을 나눈 친구들과의 성당 캠프도 역시 즐거운 일이었다. 담력훈련을 가기 전까지 말이다. 


열 살 남짓에 떠났던 성당 캠프의 저녁 시간, 팀을 나누어 담력훈련을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담력훈련이란 것은 도무지 그 소용을 알 수가 없다. 일종의 정신적 체벌로, 신체적으로 고통을 주는 극기훈련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왜 공포를 목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 그러나 나의 공포와 상관없이 캠프에서 담력훈련은 진행되었다. 


만약에 나에게 담력훈련 계획을 짤 권한이 단 한 번이라도 주어진다면, 산 속에서는 절대 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만들 것이다. 우리 팀은 나고 싶은 데에 나있는 나무들과 몇 갈래로 갈라진 지형 덕분에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 와중에도 가장 나이 많은 고등학생의 주도로 헤매고 헤매어 불빛을 찾아내긴 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성당 선생님들이 해놓은 장치가 아니라 단지 산행하는 산악인들을 위한 등불이라는 것을 알고 모두는 패닉에 빠졌다. 나는 나를 둘러싼 군데군데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는 확신에 시달렸다. 우리 말고는 그 숲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나에게 뭔가가 분명히 튀어나올 것 같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낮의 숲은 아름답지만, 밤의 숲은 스산하다. 특히 어디에나 있는 숲의 움푹 들어간 곳은 더 음산하게 보인다. 나무와 나무 사이, 어떤 빛조차 들지 않는 검은 계곡의 영역. 나는 그것을 숲의 구멍이라고 불렀다. 그곳엔 무언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침대 밑이나 옷장 사이, 가로등 밑 그림자에서도 볼 수 있는 것. 희미하게 있지만 손을 들이대면 절대 잡을 수 없는 영원히 인간에게서 숨어있는 그것. 순간 나는 그 속에 발을 디뎌 빨려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목을 건드리는 바람결에 뒤를 돌면 끔찍하게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혹은 운이 나쁘면 어둠이 된다. 아마 지겹게 울었던 것 같다. 다행히 1시간 정도 후에 선생님들이 우리를 찾아냈고, 나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 임시 양호실로 옮겨졌다. 잠들기 전에 ‘OO이는 울보네’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내가 눈을 뜬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밖에서는 레크레이션이 한창이었다. 눈을 뜨니 창피함이 몰려왔다. 참지 못하고 못난 짓을 하고 말았구나. 자책하는 와중에 누군가 물었다. 

  “무서웠어?” 

  내 옆에는 또래 여자애가 누워 있었다. 단발머리에 눈이 큰 여자애였는데, 자신은 몸이 조금 불편해서 이곳에 있다고 말했다. 

  “걱정 마. 여기는 귀신 없을. 걸?”

  나는 귀신보다 성당을 다니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그 아이가 더 신경 쓰였다. 얼굴이 하얀데다가 옷도 흰 잠옷 같은 것을 입고 있어서 왠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동공도 매우 컸는데, 그 속에는 마치 우주 성단 같은 것들이 떠있는 것 같았다. 별무리가 뭉쳐서 떨어질 것 같은 눈을 가진 아이는 말이 많았다. 내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는지 계속 말을 쏟아냈다. 나는 이미 감정을 토해낸 터여서 별로 할 말이 없어 대충 대꾸해주었다. 어느 순간 나방이 방 안에 들어와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평소였으면 난리를 피웠을 나이지만 이미 감정을 토해낸 터라 힘없이 그것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쳐다보면 안 돼." 

  “왜?" 

  “나방은 마법 가루를 날개에 묻히고 있는데, 날 때마다 그게 떨어진대. 그리고 그 마법 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고 했어."   

  난 또 물었다. 

  “왜?”  

  "모르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그 말을 믿고 이불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 나방이 보이면 눈을 깜박 감았다가 떴다가 했다. 그리고 무서우니까 저 나방을 죽여야 하지 않냐고 말했다. 그때 그애가 말했다. 

  "무섭다고 다 죽이면 안 돼.” 

 왜? 나는 내가 무섭다고 생명을 빼앗은 벌레들을 떠올렸다. 

  “그러면 우리도 죽는대.” 

  이 말을 듣고 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불 속에 얼굴을 숨겼던 나는 갑자기 그 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 애가 이 수련원에 사는 귀신이라든지 혹은 내 또래로 변신한 다른 어떤 것이라든지 하면 어떻게 하나 고민을 하다 결국 잠이 들었다. 알고 보니 그 애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이었고, 몸이 약해 오후 일정을 끝내고는 쉬고 있었다고 했다. 몸집이 작아 내 또래로 보였던 것이다. 나는 그 애를 다시 만나려고 다음날 일정 내내 다른 팀을 기웃거렸지만 찾을 수 없었다. 몸이 좋지 않아서 일찍 떠났다고 했다. 나는 나방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왜 죽이면 안 되는지 등을 다시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때 이후로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무서워하는 걸 없애면 왜 안 되는 걸까. 


나중에 나방에 눈을 멀게 한다는 얘기 같은 건 거짓말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런 말도 안되는 얘기를 믿냐는 말도 들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웬만한 이야기는 거짓이라고 단정하지 못한다. 지나친 가격 인하는 믿지 않지만, 들어본 적 없었던 내가 확인해보지 못한 이야기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이다. 우스운 일은 내가 무서워하던 어둠 속에 숨어있다고 생각했던 귀신 이야기를 싫어했던 만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걸 글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무서운 걸 없애면 안 된다고 했던 그 애의 말이 어떤 영향을 주었던 걸까. 다행인걸까. 그 반대인걸까. 별 상관 없는 걸까. 

이전 07화 친밀한 사물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