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살러 간 적이 있다. 서귀포에 있는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로 머물며, 일주일에 반은 일하고 반은 쉬었다. 쉬는 날엔 동료 J와 놀거나 여행을 가고, 아니면 혼자 산책을 했다. 일하는 날에는 낮에는 청소를, 밤에는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카페를 지켰다.
간혹 혼자 온 여행자들이 바 형태로 되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원하면 커피를 내렸고, 각자의 맥주를 들고 오면 시장에서 사 온 말린 크랜베리와 아몬드를 섞어 내놨다. 그때 잠깐은 술도 못하고 말주변도 없는 내가 조용한 바 안에서 투명한 무지개색 음료를 내놓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밤에 카페를 지키면서 나는 혼자 온 여행자들과 우리가 왜 제주로 오게 되었는지 말을 나누곤 했다. 카페의 조명은 언제나 손님들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보다 어두운 부엌에 서있던 나는 그들의 얼굴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얼굴들은 복잡했다. 홀가분한 표정이나 평화로운 얼굴을 한 사람은 없었다.
다음날 여행자들이 지나간 자리를 쓸고 닦을 때면 육지로 올라가 복귀할 그들의 일상이 떠올랐다.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생활이 어떤 흔적을 남기고 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맑은 날에는 이불을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넣어 말렸다. 그리고 한가하게 동네를 걸었다. 나보다 오래 머문 동료 J는 달처럼 은은한 애였다. 그 애랑 같이 걸을 때도 있었다. 그 애는 언제나 환하게 웃어주다가 정말 가끔 수심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 마치 갑자기 두렵고 낯선 공간에 떨어진 것처럼 순식간에 얼굴이 변했다. 그러다가도 곧 상아빛을 뿜어내며 웃던 J는 나에게 얼른 육지로 가라고 했다.
혼자 걸을 때에는 그 애의 얼굴을 포함해서 내가 만났던 얼굴을 생각하다가 제주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길이 있으면 아무 데나 걸으면서 정돈되지 않은 혼잡한 풍경을 보는 것이 제주에서의 내 일과 중 하나였다. 가끔 ‘저것이 여기 있어도 되나?’하고 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다. 어디든 나를 따르는 전선이나 숲에든 바다든 찻길에든 명랑하게 선 생활체육기구들을 보면 우습지도 않은데 웃음이 나왔다.
풍경들 속에서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기시감을 느꼈다. 그때마다 내 가슴이 참으로 벅차올랐고, 하나의 문장이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이것이 전부구나.
그리고는 나만의 생활이 기억났다. 향긋하고 따뜻하지만 무섭고 낯선 일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내밀하고 혼잡한, 우리가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감정들을 뒤섞은 모든 것.
그때마다 나는 내가 두고 온 나의 생활로 한 발자국씩 다가섰다.
내가 육지로 갈 때 달 같은 동료 J는 웃으면서 자신도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졌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만의 생활이 복잡하면서도 아주 풍요롭기를 바랐다.
아마도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