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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스텔라 Aug 23. 2024

고양이만 있는 집에 불이 났던 그날

듣기만 해도 아찔한 단어 '화재'.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손이 떨린다.


나는 베란다가 딸린 원룸 아파트 2층에서 살고 있었다.

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던 어느 평일이었고 나는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와서 걷고 있는데 이상하게 싸한 느낌이 들었다. 참 감각이라는 게 무섭다.


아파트 화단에는 매우 익숙한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심지어 내 베란다에 설치되어 있던 그물막도 반쯤 녹아 있었는데, 둔하게도 별 생각을 하지 못했다.


1층부터 집으로 걸어 올라오는 중, 타는 냄새가 났고, 2층 복도에는 소화기가 쓰러져 있었으며, 내 집 문 앞에는 '화재발생으로 경찰과 소방차가 출동하였으니, 연락 바랍니다.'라는 쪽지가 붙어있었다.



화재라니..? 그럼 슈무지는?



쪽지를 읽자마자 갑자기 손이 떨려왔고 그렇기에 열쇠로 문을 여는데도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 시간 동안 '슈무지는 괜찮겠지?', '슈무지가 쓰러져있으면 어떡하지?' 등등의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슈무지는 아무 데도 없었다.

뭐지, 어디 간 거지 왜 없지, 하고 미친 듯이 구석구석 찾고 있는데, 이불속에서 기어 나오는 슈무지..


"냥?"

영문을 모른다는 듯한 표정과 졸린 눈을 뜨며 기지개를 켜는 슈무지를 보고 나니, 다리가 풀렸다.

오 마이갓.. 진짜.. 너무 놀랐다.


내가 13시에 도착하자 내 바로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나와 얘기해 주기를:

화재는 30분 전인 12:30분에 발생하여 누군가의 신고로 소방관이 출동했고, 12시 35분에 소방관이 와서 화재를 진압했으며 12시 40분쯤 경찰들이 출동해서 원인파악을 했고 12시 50분쯤 모두 돌아갔다.


원인파악을 위하여 쪽지에 쓰인 곳 (경찰서)으로 전화를 했다.

"몇 분 전 아파트 화재로 인한 사건으로 전화드립니다. 주소는 ㅇㅇ동 2층입니다."

"많이 놀라셨죠? 하지만 다행히 주민의 빠른 신고로 큰 화재를 피했으며, 베란다에 위험한 물건이 없어서 화재진압이 수월했습니다."

"원인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확실한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일 것이라 추측됩니다."


아. 담배꽁초.

이웃 주민들이 양, 옆, 아래, 위로 담배를 많이 태운다. 그리고 담배꽁초를 밑으로 던지는 경우도 꽤 많다. (정마 화가난다.)

그날은 유난히도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었는데, 빌어먹을 담배꽁초가 내 집 베란다로 들어온 모양이다.

화재발생 직후

다행히 베란다에는 버리려고 모아둔 종이박스들과 몇 가지 잡동사니만 있었을 뿐 중요한 물건은 없었다.

'슈무지도 무사하니 이만하면 다행이다' 싶은 마음으로 정리를 했다.

탄 흔적들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화재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것과 화재는 내가 아무리 주의한다고 해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재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아찔한 기억은 나로 하여금 더욱더 경각심을 갖게 한다.


이제는 그날의 공포를 잊지 않고, 내 주변의 작은 위험 요소도 소홀히 하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하지만 집에 슈무지를 홀로 두고 나올 때면 그날의 기억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자나 깨나 불조심!

후담.

- 학교 교장쌤이 당시 동네 주민이었다. 화재가 난 다음날 출근을 하고 앉아있는데 그가 나에게 와서 말한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봤는데, 어제 우리 동네에 불났었데!" 라며.

“응. 거기 우리 집이야." 하니까 o0o 하며 놀라워하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 하나 더, 신문에 경찰 추정 화재 피해 금액은 100유로 미만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하.. 정확하다.


- 또 하나 더, 화재보험을 들어놨기에 300유로 (45만 원)을 받았는데, 450만 원 달라고 해도 무리 없이 받을 뻔했다. 허허


-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 더, 2024년 1월에 이사하기 며칠 전에 발생한 화재지만, 아직 수습이 안 돼서 보증금을 못 받았다. 집주인은 화재 수습이 다 되면 입금해 준다고 하는데...

에휴, 괜히 못 받으면 어쩌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새로 이사 온 집에는 혹시 모를 비상시에 슈무지가 탈출 가능 하도록 이웃 사람들과 집 열쇠를 서로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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